사랑 떠나보낸 여자의 노래
‘전무후무’ 샹송 디바
연인 잃고 무너진 삶

▲ 에디뜨 피아프 ‘사랑의 찬가’ 앨범 표지.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진다 해도

당신 한사랑만 있다면 아무래도 좋아요

매일 아침 사랑이 넘쳐 흐르고

내 몸이 당신 품에서 떨고 있는 한

세상 모든 건 아랑곳 없어요

당신이 원한다면

세상 끝에라도 가겠어요

검은머리를 금발로 바꾸겠어요

당신이 원한다면

밤하늘의 달도 따러 가겠어요

보석을 훔쳐 오라해도 하겠어요

조국도 친구도 버리겠어요

그러다 어느 날 운명의 신이

당신을 데려가 우리를 갈라놓아도

당신 사랑만 있다면 상관없어요

나 또한 당신을 따라갈테니까

에디뜨 피아프 ‘사랑의 찬가’ 中



“보고 싶어요. 빨리 와줘요. 배는 너무 느려요. 비행기로 오세요.”

이 전화통화가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연인 사이의 마지막 대화였다.

1947년 에디뜨 피아프는 미국공연 길에 오른다. 그곳에서 마르셀 세르당이라는 권투선수를 만났다. 마르셀은 미들급 세계챔피언으로 방어전을 위해 뉴욕에 왔다가 에디뜨를 만나 운명적 사랑을 하게 된다.

둘은 첫눈에 반해 불같은 사랑을 나누었으나 마르셀은 이미 아이 셋을 둔 기혼자였다. 그는 에디뜨와 결혼하기위해 아내를 설득하려고 알제리에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파리에서 여인과 마지막 통화를 한 후 비행기 사고로 세상을 뜨게 된다.

자신의 재촉으로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에디뜨의 충격은 어떠했을까? 그녀는 그 심경을 노랫말로 지었다. 마르셀이 떠난 이듬해, 1950년에 발표되어 전 세계인의 심금을 울린 사랑의 찬가(Hymne A L’amour)이다.

에디뜨의 삶은 출생부터 기구했다.

길거리 가수였던 그녀의 어머니는 산통이 오자 병원으로 달려가다 길에서 해산을 한다. 지나가던 경관이 산파 역할을 했다 한다. 1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15년, 크리스마스를 며칠 앞둔 추운 밤이었다.

모성애와 거리가 먼 어머니는 외할머니에게 그녀를 팽개치고 다른 남자를 따라 어디론가 가버렸다. 외할머니 역시 그녀를 키울 능력이 없어 곡예사인 아버지는 친할머니에게 그녀를 맡겼다.

열네 살이 되자 아버지와 함께 유랑악단과 길거리 가수로 떠돌다가 캬바레 주인의 눈에 들어 무대에 데뷔한다. 차츰 명성을 쌓아가던 에디뜨는 스물아홉 살에 꿈의 무대인 물랭루즈에 입성했다.

그때 그녀는 문화계의 저명한 인사들을 많이 만났고, 이브몽땅과 염문을 뿌리며 화제의 중심에 섰다. 대(大)시인, ‘장. 꼭또’는 그녀의 노래를 듣고 ‘피아프 전에 피아프 없고, 피아프 후에 피아프 없다’는 찬사를 보냈다.

키가 142cm밖에 되지 않는 가냘픈 몸매에서 울려나오는 영혼의 소리는 청중들의 혼을 앗아가기에 충분했다.

“전후 샹송은 에디뜨에 의해 재편되었다”는 찬사를 한 몸에 받으며 미국에서까지 대성공을 거두었으나 마르셀을 잃은 후 그녀의 삶은 모두 무너져 내렸다. 설상가상으로 네 번씩이나 교통사고를 당하게 되고 후유고통을 덜기 위해 손댄 마약으로 인해 삶은 더욱 황폐해져 갔다. 마르셀을 잊기 위해 수많은 남성들과 만남과 헤어짐을 반복했으나 결국 그 빈자리를 메우지 못했다.

그러던 1963년 어느 가을날 그녀는 힘겹게 걸치고 있던 육신의 허물을 벗어 놓는다. “고독의 여정을 다한 배”라는 장. 꼭또의 애도사처럼.

<한국방송디스크자키협회 감사

전 한국교통방송·CBS D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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