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봉기

강원대병원 심장내과 교수

요즘 의료계의 화두는 한의사에게 영상진단장비 사용을 허하는 것에 대한 설왕설래였다.

이에 대해서는 이미 유형의 결정이 난 상태이므로 언급을 피하겠지만 개인적으로는 한가지 추억의 단초가 되었다. 어려서부터 의사가 되기를 꿈꾸던 나는 고3이 되어 극심한 혼란을 겪었다.당시는 전국 수석이 서울대 전자공학과를 지원하는 것이 상례였듯이 공과대학이 의대의 인기를 앞지르고 있었다. 기계와 전자에 대한 취미도 좋았던 바 계산상으로는 공대가 전망이 좋아 보이는데 어릴 때부터의 꿈을 포기하는 것이 싫어서 결국 공대를 놓았다.

의대를 지원하자 하니 이번에는 한의대가 보이기 시작했다. 졸업 후 실제 환자를 접하고 수익을 만들기 시작하기까지의 기간이 짧고 수월하다는 것과 수입이 좋다는 장점이 부각되어 역시 한의대의 인기가 의대를 앞지르던 시절이었다. 계산대로 하자니 한의대를 가는 것이 나을 것 같은데 내 오랜 꿈을 배신하는 느낌이 싫어서 의대에 진학했다. 다행히도 내 꿈에 대한 의리를 지킨 역사는 나를 배신하지 않았다.

만약 계산대로 움직여서 다른 길을 택했다면 성공적이었을 수 있었겠지만 만일 만족스럽지 않은 상황이 지속되어 왔다면 버림받은 꿈에 대한 미안함과 아쉬움이 얼마나 내 삶을 괴롭히고 있었을지 상상하기도 싫다. 이러한 선택의 고통은 인턴수련을 어디에서 받을지, 무슨 과를 전공할지, 무슨 분과를 전공할지를 결정해야 하는 고비마다 나를 또 지치게 만들었지만 그 때마다 내가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가에 집중하는 태도를 견지했다. 계산이 빗나갔음을 자각했을 때의 고통이,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고 있는 것에 대한 불만족보다는 클 것이라는 두려움, 그리고, 계산이 적중했음을 목격하게 되었을 때의 만족감이, 원하는 것을 하고 있는 충족감을 넘어서지는 못하리라는 직관이 그러한 결정방식을 따르게 인도했다. 그러한, 결정방식은 주로 나를 불편하게 만드는 경우가 많았기에 군의관 시절에는 사하라사막의 모래바람 속에서 파병생활을 겪게 만들었고, 부부가 서울의 낯선 병원에서 전임의 생활을 하며 고생을 하기도 했지만, 원해서 고른 선택들이었기에 기꺼이 그 선택의 결과물을 받아들여 즐겁게 과정을 겪을 수 있었고, 즐거움은 충실함을 선물로 주었다. 이러한 원리가 결국은 내가 믿는 창조주의 섭리임을 어렴풋이 깨닫고 있는 것은 최근의 사안이기도 하다.

또한 재미있는 것은 결혼과 출산을 겪으면서 그러한 선택의 원리가 개인에서 가정으로 확장됨을 겪어 온 사실이다. 가족 구성원 개개인에게 이로워 보이는 것이 무엇인가를 계산하기보다는 가족이 원하고 이로움을 얻을 것이 무엇인가를 바로 보고 선택하는 방식이다. 이 원칙은 우리 가족 구성원의 일할 곳, 살 곳, 배울 곳을 결정하는 데 있어 지침이 되었다. 때문에, 주말가족이 되는 것은 피했지만 춘천으로 이사온 후 서울의 아파트값이 치솟던 상황을 보며 아쉬워했고, 출퇴근의 어려움을 무릅쓰고 아이를 강남에서 키우고자 이사하는 가정들을 바라보며 내심 밀려오는 불안감이 당황스럽기도 했다. 하지만 결정이 어떠한 결과로 이어지든 간에 그 결정이 우리를 배신하지 않으리라는 낙관을 하는 것은 그 결정의 방식이라는 실체는 내가 선택이라는 것을 시작해야 했던 때 태어나서 지금도 잘 자라고 있는 나의 무형의 분신이기 때문이다.



나는 지금도 좋은 것이 있으며 그것이 접근 가능한 범위에 있으면 이리저리 재는 과정을 거치지 않고 지르고 벌인다. 그로 인한 즐거움과 소득에 따라오는 고통과 손해도 있지만, 가보지 않은 길과 해보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을 피하는 비용으로는 저렴하다는 느낌이다. 선택의 자유를 누리는 전문직 중산층 가장의 배부른 소리로 치부할 이도 있겠지만 ‘좋아하는 것을 해야 잘 할 수 있다’는 명제를 반박할 수 있는가? 잘하려면 좋아해야 한다. 그리고 뭐라도 잘하는 게 있으면 먹고 살 수 있는 세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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