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학성

강원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노란 손수건’은 부자지간 또는 부부간의 사랑이야기로 국내외적으로 넓게, 또 다양한 예술장르를 통해 우리에게 익숙하다.

노란 손수건의 원조는 1971년 Pete Hamill이 뉴욕 포스트에 기고한 ‘Going Home’이라는 칼럼이라고 한다.

이 글은 플로리다의 Fort Lauderdale로 가는 버스 안에 있던, 형기를 마치고 막 출소한 사람의 사연이었다. 출소한 사람은 자신의 고향마을 길가의 떡갈나무에 묶여있는 ‘노란색 손수건’을 찾고 있었다.

그는 출소 직전 아내에게 편지를 보냈는데, 출소한 후 고향마을을 지날 때 노란 손수건을 나무에 걸어두면 자신을 용서한 줄로 알고 내리겠지만, 그렇지 않으면 아내를 미워하지 않고 그대로 지나치겠다는 내용이었다.

버스가 마을에 가까이 왔을 때, 출소자는 차마 노란 손수건이 매여 있는가를 확인할 엄두조차 낼 수 없었는데, 동석한 사람이 그것을 발견해주고, 아내와 기쁘게 재회한다는 내용이다.

노란 손수건은 ‘Tony Orlando’의 ‘Tie A Yellow Ribbon Round The Old Oak Tree’로 히트하면서 더욱 유명해졌다. 우리나라에는 1975년 오천석 박사가 펴낸 노란손수건이라는 책(샘터)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부자간의 사랑이야기로 봤을 때, 마지막은 이렇다. 은행나무가지마다 노란 손수건이 몇 장씩 매달려 있어서 은행나무 전체가 노란 잎으로 출렁이는 듯 했다. 혹시 아들이 못보고 놓칠까봐 늙은 아버지는 엄청나게 큰 노란 깃발까지 들고 버스를 향해 힘차게 흔들어대고 있었다. 아버지의 마음이다.

부모 자식관계는 논리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관계가 아니다. 주고받는 관계로 부모자식을 바라본다면 자식 키우는 일만큼 손해 보는 장사는 없다. 이 세상 어느 누구도 다른 사람에게 그토록 많은 돈과 마음과 시간과 정성을 투자하지 않는다. 부모자식은 마음에 들지 않아도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이며, 울컥하는 뭉클한 관계이고 그리움의 관계다.

성경에 나오는 ‘돌아온 탕자이야기’는 아버지의 사랑을 보여주는 유명한 예화이다. 둘째 아들이 아버지의 유산을 요구하여 받은 후, 멀리 떠나 살다가 재산을 모두 탕진하고 아버지께로 돌아오는데, 아버지가 모든 것을 용서하고 기쁘게 받아 준다는 내용이다. 유산을 달라는 것도 무례한 요구지만, 집을 떠났다는 것은 집과 연을 끊고 두 번 다시 집으로 돌아오지 않겠다는 것으로 패륜적이다. 자녀들은 철이 들면서 이상한 음성을 듣기 시작한다. “집을 나가 너의 존재의미를 입증해 보라. 너도 아버지 없이 뭔가 할 수 있음을 보여줘라. 그럼 아버지도 놀라며 너를 만만히 보지 못할 것이다.”

자녀들은 세상의 사랑은 조건적인데도 이를 모르고 그런 세상으로 날아가고자 한다. 그리로 가면 구름을 탈 것만 같은가 보다.

그러나 세상은 빼앗는 곳이고 비정한 곳이다. 돈이 떨어져 세상과의 연결고리가 끊어진 그 순간부터, 주변에 그토록 많았던 친구들과 여인들이 거짓말처럼 사라져 버린다. 방향을 잃고 방황이 시작된다. 아들은 재산을 모두 탕진하고 알거지가 될 때 다시 아버지를 찾는다. 아들은 더럽고 냄새나는 몰골이었지만, 아버지는 달려가 아들을 얼싸안는다. 사랑은 냄새를 모르고, 더러움을 상관하지 않기 때문이다.

2년 전 어머니가 소천하셨다. 어머니를 간병하면서, 몇 가지 교훈을 얻은 바 있다. 사람의 출생과 죽음에는 유사점이 많다는 것이다. 태어날 때 출산의 고통이 있다면 죽음을 맞이할 때 역시 죽음의 고통이 수반된다. 흙에서 시작했는데 한 줌의 흙으로 마감하며, 빈손으로 왔다가 갈 때도 빈손이다. 영과 육의 결합이 출생이라면 죽음은 양자의 단순 분리일 뿐이다. 연로하신 어머님의 옷 입는 모습에서 유치원 자녀의 옷 입는 모습이 연상되었다. 병환이 깊어져 거동이 어려운 상황에 처한 어머님을 보면서 어릴 때는 부모가 아이에게 젖을 물려주지만 나이가 들어서는 자식이 어머님께 젖(미움)을 먹여드려야 하고, 어릴 때는 아이의 용변을 부모가 책임졌는데 나이 들어서는 자식이 부모님의 용변을 책임지는 구나 생각되었다. 자식을 걱정하여, 날씨가 춥지 않을 때 천국가게 해달라고 늘 기도하셨는데 그 기도 이루고 가셨다. 자식은 열 번 죽어도 부모의 사랑 따라갈 수 없다. 예수 잘 믿으라는 유언, 마음에 깊이 새기고 또 그리해야겠다. 그리스도의 향기로 그리스도의 편지가 되고자 한다. 가정의 달, 어머니를 생각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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