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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일 소령의 부친 심기연 옹의 강원사랑

김동정 2015년 05월 20일 수요일
   
▲ 김동정

강원도사편찬위원회 상임위원

65년 전인 1950년 6월 25일 오후 2시경, 제6사단 7연대 대전차포대 2소대장이었던 심일 중위는 5인조 대전차특공대를 조직하여 적의 자주포 2대를 파괴하여 춘천대첩 공신 중의 한 사람이 되었다. 그러나 7개월 후 영월에서 정찰 중 적탄에 산화하였다. 훗날 경찰이었던 그의 동생 심민도 1960년 순직하였고 6·25전쟁 당시 17세였던 동생 심익도 학도병으로 참전하였다가 실종되는 등 3형제 모두 조국을 위해 호국영령이 되셨다. 이 3형제를 훌륭하게 키워낸 부친 심기연옹은 더 훌륭한 선행과 강원사랑을 실천하였다.

심일 소령의 부친 심기연옹은 함경남도 단천 출신으로 젊었을 때 일본에 건너가 기술을 배워 장년이 되어 돌아왔다. 이후 고향에서의 그의 삶은 ‘선행의 삶’ 그 자체였다. 1935년 7월, 길주지역의 흉작으로 많은 재민(災民)이 발생하자 구제금 30원 후원을 시작으로, 1936년 3월 경영에 어려움을 겪고 있던 길주군 양사면 백암동 관서서당에 5000원 거금 후원, 1936년 6월 백암동관서학원에 3000원의 의연금을 내었고 1936년 8월에는 현백암서당을 건립하여 아동들을 취학(就學)케하고 유망한 청년들은 경성이나 동경 등지에 유학케 하는 등의 선행을 행하였다.

1939년에는 1만 원을 희사하여 백암학교를 설립한 것을 비롯하여 불탄 복성학교에 1000원, 상공회에 500원을 각각 희사, 기타 공공사업과 어려운 이웃들을 위해 쓴 돈이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아 단천사회에서 칭송이 자자했다.

광복 이후인 1945년 12월에 월남하여 서울에 임시 머물다가 원주에 자리잡고 정착하였다.

전쟁의 상흔이 지난 후 부인(조보배)은 원주에서 복주여관을 운영하였고 심기연옹은 속초에 가서 사업을 하여 1958년 3월 20일에 현대산업주식회사 설립, 1959년 8월 31일에 현대극장 개관, 그리고 목재소 사업 등을 하면서 기업인으로 활동하였다.

1962년에는 강원도 소유의 명주군(현 강릉시) 구정면 구정리 산 41번지 60정보를 매입, 개간하여 난민 22가구를 입주시켰다. 입주민들은 이 마을을 심기연 옹의 호를 따서 ‘청파(靑坡)마을’이라 하였다. 1966년 8월 19일에는 청파마을 입구에 은혜를 입은 수은인(受恩人) 22명이 ‘자선가청송심공기연시혜불망비(慈善家靑松沈公基淵施惠不忘碑)’를 세웠다.

이에 정부에서는 1969년 사재 500여 만원을 투입, 산야를 개간하고 주택을 건립하여 부락민 22가구를 입주 정착시킨 공로로 5·16민족상을 수여하기도 하였다. 현재 청파마을에는 당시 22명의 후손은 거의 살고 있지 않고 있으며, 당시의 가옥은 한 채도 남아있지 않다. 원주에서의 선행도 계속 이어져 1965년 4월에는 현충탑 부지 3만 2538㎡를 기증하고 1966년 현충탑이 준공된 이후에도 1974년까지 여러 차례에 걸쳐 현충물 설비에 100여 만원을 기부하였다.

이렇듯 1979년 이 세상을 떠날 때까지 부인 조보배 여사(2005년 101세 별세)와 함께 40여 년 동안 국가와 강원도를 위해 쉴 틈 없이 선행을 했다. 마치 세 아들이 못다 한 몫까지 다 한 것처럼. 다행히도 1954년에 태어난 넷째 아들 심승택씨가 듬직하게 가문의 정신을 계승하여 원주에서의 공직생활을 마무리하고 부모님과 형님들의 우국충정과 강원사랑을 전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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