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동찬

강릉단오제위원회 상임이사

을미년 6월은 메르스가 온 국민을 하루하루 힘들게 만들더니, 결국은 천년의 축제 강릉단오제마저 삼켜버렸다.

민속놀이와 문화행사는 물론, 난장 등 부대행사가 모두 취소되고 제례와 단오굿, 관노가면극 등 지정문화재 행사만 열리는 초유의 일이 일어났다.

착잡한 마음으로 지정문화재 행사가 열리는 강릉 남대천변 국사여성황사로 향하던 지난달 19일 아침,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서진영 박사의 시사고전의 한마디가 신선하게 가슴을 훑고 지나갔다.

올해 강릉단오제 행사의 결정 과정을 지켜보면서 ‘규칙이나 약속을 오래오래 지켜나간다’는 뜻의 영구준행(永久遵行)에 비유했다. 서 박사는 올해에는 비록 집단 신명은 이루지 못하지만 단오정신은 이어가는 영구준행의 힘이 강릉단오제와 함께 하기를 기원하며, 이렇게 우리는 역사를 계속 이어간다고 말을 맺었다.

강릉시민에게 단오는 삶의 일부분이다. 힘들고 어려울 때나, 즐겁고 기쁠 때에도 항상 강릉단오제와 함께 했다. 조상들이 오랜 세월 그러해왔듯이 우리의 후손들도 그렇게 더불어 살아가기를 바라면서 단오를 이어왔다. 그러므로 강릉단오제를 치르는 시민들의 정성과 열정은 눈물겹다.

일제강점기의 혹독한 탄압에도, 6·25전쟁 중에도 중단을 하지 않았고, 가깝게는 사스와 신종플루, 노무현 대통령 서거, 세월호 참사에도 우리가 소중하게 지키고자 하는 가치가 중요하다는 시민들의 동의로 눈물을 뒤로 하고 흔들림 없이 단오를 치렀다.

이것이 강릉시민들이 가슴 속에 품고 있는 자긍심이며 자랑인 것이다.

강릉단오제는 강릉시민들의 힘으로 치러진다.

민속놀이와 경축문화행사 등을 주관하는 기관단체들은 위원회에서 지원받는 보조금으로는 턱없이 부족한 예산이지만 회원들이 십시일반 하여 사업비를 충당하고 인력 봉사의 수고로움을 감당하면서도 강릉시민으로서 당연히 해야 하는 일로 여기며 매년 기꺼이 동참한다. 또한, 강릉 시민들은 단오 전야제에 해당하는 국사성황신을 모시는 영신행차에 한복을 곱게 차려 입고 소원등 행렬에 참여하는 것을 자랑스럽게 여긴다. 이런 전통은 2004년 국제관광민속제 때, 시민들이 비바람이 몰아치는 악천후 속에서도 5km가 넘는 영신행렬에 흐트러짐 없이 참여한 것은 지금도 회자되고 있다.

단오제 기간 동안 시민과 관광객들이 나눠먹을 신주와 수리취떡을 만드는데 쓸 신주미 봉정 행사에 매년 5400여 세대가 160여 가마의 쌀을 모으는 일은 유래를 찾아볼 수 없는 공동체사회의 아름다운 모습일 것이다.

올해는 단오제의 부대행사와 난장이 취소되어 그동안 준비를 위해 쏟아 부었던 노력이 수포로 돌아가고, 금전적인 손해까지 크게 입은 분들도 아픔을 속으로 삭이며 겉으로 드러내지 않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시민들은 신주미로 정성들여 빚은 신주를 마시며 단오제를 치루지 못한 서운함을 달래기 위해 단오문화관에 마련된 신주교환 장소를 찾아오는 수고로움도 마다하지 않았다. 일부 마을에서는 그동안 준비해 왔던 마음을 추스르고 허전함을 달래기 위해 조촐하지만 의미있는 잔치를 벌이기도 했다.

이것은 강릉시민들의 몸과 마음속에 단오제를 사랑하고 함께하겠다는 단오DNA가 있기에 가능하고, 바로 이것이 단오정신이 아닐까 생각한다.

출향 인사들도 세상 어느 곳에서 어떤 삶을 살아가든, 힘들고 어려울 때는 항상 고향의 산천과 단오제를 생각하며 힘을 얻는 에너지의 원천이 된다고 한다.

이러한 강릉시민의 단오DNA, 단오 정신은 어느 한순간, 누구에 의해서 이뤄진 것이 아니라 오랜 풍습 속에 자연스럽게 생겨난 것이다.

시대가 바뀌고, 삶의 방식이 바뀌어도 이 땅에 살아온 우리의 선조들이 그랬듯이 강릉단오제는 끊임없이 이어질 것이다.

그것이 지역공동체의 힘이고, 현대화된 삶의 모순을 극복하는 또 다른 힘이 원천이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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