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장호

천주교 춘천교구

설악동성당 주임신부

가끔 전철을 타면 ‘사람들은 세상을 살면서 너무나 바쁘게 움직이고 있구나’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정작 사람들 하나하나의 모습을 보면 게임을 하거나 졸고 있습니다. 움직일 때는 바쁘게 보이지만 남는 시간에는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는 모습으로 보입니다. 이 모습은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만이 아니라 신앙인들의 모습에서도 쉽게 찾게 됩니다.

수난 금요일에 그리스도 신자들은 예수님과 함께 겟세마니 동산에서 함께 기도함을 생각하며 수난 감실 앞에서 기도합니다. 그 기도를 하는 동안 신자들은 과연 무슨 생각을 하며 기도할까? 무엇을 느낄까 생각해 보게 됩니다.

수난 감실 앞에서 매일 미사 책에 있는 기도를 펼쳐보면 전 이런 생각부터 듭니다. “참… 무언가를 많이도 해야 하네.” 또 “그저 주님 앞에 앉아서 주님을 마주하면 그만인데…. 좀 더 나아간다면 주님께서 무엇을 생각하며, 어떤 마음이셨는지만 알면 되는데 너무 어렵게 하는 것은 아닌가?”하는 생각마저 듭니다.

그래서인지 저는 성체조배 하며 그저 “나를 보내신 분의 뜻은, 그분께서 나에게 주신 사람을 하나도 잃지 않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것이다. 내 아비지의 뜻은 또, 아들을 보고 믿는 사람은 누구나 영원한 생명을 얻는 것이다.”(요한 6:39.40)라는 말씀에 푹 빠져 들곤 합니다.

우리는 가끔 본질을 잃어버릴 때가 많이 있습니다. 제가 신자들이 수난 감실 앞에서 ‘성체조배’를 하면서 무엇을 느끼는지 궁금했던 것처럼, 전혀 본질을 잃어버리고 형식에 너무 얽매어 있지는 않은지 생각해 보게 합니다.

우리의 삶에서 잃지 말아야 하는 것은 항상 초심을 지켜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 초심을 놓친다면 언제나 방황할 뿐입니다.

우리가 삶을 살아가면서 행하는 것들은 과연 어떤 목적을 가지며 무엇을 위해 하는 것일까요? 여러분이 돈을 버는 목적 역시 돈을 잘 쓰기 위함이며, 학생들이 공부를 하는 이유는 좋은 대학을 가거나, 좋은 직장에 취직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배움을 통해 삶의 깨달음을 얻기 위함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맹목적으로 돈을 벌고, 맹목적으로 공부합니다. 우리는 이처럼 본질을 잃어버리고 삶을 살아갑니다. 그래서 방황하고, 답답함을 느끼며 삶의 염증을 느낍니다.

이 글을 읽는 여러분들이 가끔 저처럼 한적하고, 조용한 자리에 있어보셨으면 합니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모든 것을 멈추고 유심히 관찰 하듯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자연이 들려주는 소리와 자신의 삶, 지나가는 행인들, 연인들, 어르신들 과연 그들은 어떤 목적과 무엇을 위해 살고 있는지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다들 자신의 생각하는 대로 움직일 것입니다. 그리고 무엇인지 모르지만 바쁘게, 빠르게 돌아가는 세상에서 나는 무엇을 생각하며 살고 있는지, 목적 없이 삶을 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예수님께서 신앙인들에게 바라는 것은 하느님을 아는 것이고, 하느님께서 바라는 것은 신앙인들이 사랑을 깨닫고 영원한 생명을 얻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신앙인들은 십자가를 바라보며 영원한 생명을 얻고자 노력해야 합니다. 항상 우리의 편이 되어주시고, 우리를 위해 당신의 모든 것을 내려놓으신 주님의 사랑 속에 살아야 합니다. 진정으로 우리 신앙인들의 자랑거리이심을 가슴으로 절실히 느껴야 삶이 변화됩니다. 여러분도 삶의 자리에서 자신의 삶을 들여다보며 방황하는 자신의 모습의 중심을 잡기 위해 항상 노력하셨으면 합니다. 그럴 때에 조금이나마 행복한 삶으로 나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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