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서 지방대표성 약화… 수도권 격차 심화”
[신년대담] 조순 전 경제부총리 - 전상인 서울대 교수

새해가 밝았다. 하지만 희망 보다 걱정이 앞선다. 정치는 여·야 대치,야권 분열,국회와 청와대의 잇딴 충돌로 시계제로 상태다. 총선과 대선을 앞두고 국민과 민생은 뒷전으로 밀려났다. 경제는 고용 없는 저성장의 터널이 이어지고 있다. 1·4분기에 내수절벽이 예상되고,3.0% 성장도 장밋빛 전망에 그칠 가능성이 높다. 사회는 ‘금수저’와 ‘흙수저’로 대표되는 양극화가 극단을 향해 치달으면서 ‘헬조선’이 현실화되고 있다. 인구 감소와 고령화로 대한민국의 성장엔진은 서서히 멈춰가고 있다. 대한민국 3%,강원도는 더 어렵다. 선거구 축소,지역내총생산(GRDP) 위축,인구 정체 등은 ‘3% 마지노선’의 붕괴로 이어지고 있다. 앞날도 불안하다. 2018년 평창올림픽 이외에 비전은 보이지 않는다. 비전과 희망을 내놓아야 할 정치 지도자와 지역 원로는 없다. ‘포스트(POST) 2018’의 부재가 강원의 현주소다. 나라가 어렵고,강원은 위기다. 강원도민일보가 새해 아침 조순 대한민국 학술원 회원(전 경제부총리)과 전상인 서울대 교수(전 한국미래학회장) 간의 대담을 마련한 이유다. 대담은 지난달 23일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진행됐고,사회는 남궁창성 서울본부 취재국장이 맡았다.
 

▲ 조순 전 경제부총리(왼쪽)와 전상인 서울대 교수가 한국프레스센터에서 남궁창성 강원도민일보 서울본부 취재국장 진행으로 신년대담을 갖고 있다. 서울/안병용

정부가 대접해주길 너무 기대하지 말자
서울만 바라보지 말고 스스로 노력할 때
똑똑한 정책을 가지고 합리적 예산 진행

 

-정치,경제,사회적으로 나라가 어렵다. 강원도도 비전 부재와 인재 부재에 인구 정체와 총선 선거구 축소 등 상황이 안 좋다. 그래서 두 분을 모시고 나라와 강원도의 오늘을 진단하고,대안을 모색하는 자리를 마련했다.

전상인=최근 일본에서는 ‘지방소멸’, 한국에서는‘지방 식민지’라는 담론이 확산되고 있다. 공감하나.

조순 =수도권이 전국의 반을 차지한다. 강원도로 보면 원주같은 곳은 인구가 늘지만 동해안은 줄고 있다. 산업이 없기 때문이다. 인천 등은 수도권에 있기 때문에 굉장히 투자를 많이 하고,인구도 늘어가고 있다.반면 호남 등은 자꾸 쇠퇴한다. 일본은 지방마다 특색있는 전통이 많이 남아 있고,특색있는 오래된 산업도 많다. 일본은 또 예전부터 봉건제와 지방 영주가 있었다. 한국은 그런 것이 없었다. 그야말로 모든 권한이 서울에 있는 것이다.

전상인=나라 경제를 생각하면 수도권이 한국 성장의 동력이다. 수도권은 수도권대로 규제가 발목을 잡는다고 한다. 딜레마같다.

조순=독일은 일본보다 훨씬 더 지방분권화되어 있는 나라다. 도시 규모가 작다. 수도 베를린만 해도 300만명쯤 된다. 전체 인구의 3분의 2가 10만명 이하의 도시에 살고 있다. 그렇다고 경제가 위축된 것도 아니다. 지방의 특색을 살리고,수공업 등 여러 면에서 예전부터 기술개발이 많이 됐다. 한국은 그런 전통이 없다. 오늘날 그야말로 절벽과 같은 상황을 맞은 원인 중 하나다.

전상인=노무현 정부 때 지방분권,지방균형을 위한 노력들을 많이 했고,일부 성과가 있긴 했지만 노력에 비해서 자꾸 수도권에 집중되는 전통은 너무 오래됐다.

조순=혁신도시,기업도시를 만들어 그 지역이 살아나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 사람은 동물과 마찬가지로 먹을 것이 있는 곳에 모이는 것이다. 먹을 것을 만들어줘야 한다. 거기에 문화와 전통을 조성해 나가는 방향으로 나라가 움직여야 한다. 그러나 우리는 광복이후 나라 만들기,즉 ‘네이션 빌딩’(Nation Building)은 없었다. 개발연대에 들어와서는 빨리 발전을 하려고 대기업과 재벌 중심으로 경제발전을 했고, 빨리 수출해야 하니까 중화학 공업을 택한 것이다. ‘한강의 기적’에 대해서는 수긍한다. 하지만 역대 정부는 다른 것에 대해 별로 생각을 안 했다. 중소기업,내수산업,국민생활,소득분배 등 여러 면에서 정말 조금이라도 장래를 내다보고,나라와 전통을 만들어 가는 노력이 적었다. 교육,정치 등도 등한시 했다. 교육은 어떻게 하면 인재를 만드느냐가 목적이 돼야 한다. 그러나 서울의 좋은 대학에 합격하고,돈을 많이 벌게 하느냐에 치중돼 왔다. 교육이념부터 완전히 잘못돼 있다. 내용도 없는 대학을 잔뜩 만들었다. 인력의 수요와 공급 간 미스매치(불균형)가 이렇게 심한 나라가 없다. 인력의 수요와 공급을 잇는 방향으로 교육을 만들어줘야 한다. 역대 정부는 그런 생각을 못했고 지금도 그런 것은 없다고 본다. 현 정부에서 얘기하는 경제 활성화 등도 마찬가지다. 중소기업,내수산업이란 말은 없고,이와 관련해 교육은 어떻게 해야 한다,정치는 어떻게 해야 한다는 이런 얘기는 안 나온다. 자꾸 나라를 만들어 내려는,조금씩 좋은 방향으로 나아가려는 노력을 하고 그 노력이 국민한테 보이고,그렇게 되면 국민이 좀 더 안심을 하고 따라가기도 좋고,마음도 편해진다.

전상인=개인적으로 선진국과 개도국의 큰 차이 중 하나가 지방의 발전수준이라고 생각한다. 미국,유럽,일본은 지방이 잘 산다.정체성도 있다. 하지만 우리는 격차가 점점 심해진다.이제는 지방화를 위해 노력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조순=한국 사회는 과거 수출성장 일변도가 국가의 기본이었다.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나라 다시 만들기,‘네이션 리-빌딩’(Nation Re-building)을 해야 한다. 박근혜 대통령이 “국가개조 차원에서…” 라는 얘길 했다. 그 말은 옳다.국가 개조한다고 하는 의식을 갖고 전략을 다지고,국정에 임하고,그런 것을 가지고 경제 정책 등 모든 정책이 이뤄진다면 국민은 금방 안다.그 취지를 금방 알아챈다는 것이다.그래야 나라가 잘 된다.

전상인=무대접과 푸대접을 호소하던 호남과 충청은 요즘 살만하다. 개인적으로 지난 압축성장 시대,국가건설 시대에 강원도는 전방에서 열심히 보초 서 줬고,수도권을 위해 각종 규제를 당해야만 했다. 개인적으로 강원도는 수도권을 위해서 혹은 국가안보를 위해 조금 의도적으로 희생이 강요된,슬픈 과거가 있다. 따라서 강원도에 대해 중앙정부 차원의 관심과 지원이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조순=그 말씀 옳다. 다만,정부가 강원도에 대접해 주길 너무 기대하지 말아야 한다. 어려운 환경 속에서 우리들이 어떤 처지에 있느냐를 생각하고,똑똑한 정책을 가지고 나름의 자치 시스템을 활용하는 노력을 해야 한다. 정부가 우리를 대접해 주지 않는다는 생각을 안했으면 좋겠다. 소위 자력갱생 할 생각을 해야 한다. 수도권이나 중앙정부에서 해 주면 뭘 해 주겠는가? 자꾸 서울만 바라보지 말고,어떻게 하면 우리가 좀 더 좋은 인생을 가지느냐 하는 차원에서 결국 우리 스스로 노력을 해야 한다. 교육을 예로 들어보자. 강릉고가 있다. 강원도 나름대로 엘리트가 형성될 수 있는 학교다. 춘천고,원주고도 마찬가지다. 근데 그 (비평준화)시스템을 왜 없앴는지 모르겠다. 난 강원도민 전부가 일치돼서 반대해야 한다고 본다. 그런 정신없이 서울만 바라보면 절대 자력갱생할 수 없다.

전상인=지방이 독자적으로 발전해야 한다고 하지만 말만 지방자치지,모두 중앙이 쥐고 있어 독자적인 정책을 펴는게 어려운 실정이다.

조순=난 지방자치단체장을 해봤다. 그래도 주어진 범위에서 예산을 쓰는 등 합리적으로 하면 된다. 강릉대와 원주대를 그런 식으로 합친다고 할 것 같으면 강원도민들한테 여론을 환기시키면서 ‘이렇게 하면 대학이 이러이러해서 잘 된다고 생각하는데요?’ 라고 한번 해 보면 될 것을, 그런 노력은 안한다. 강릉대면 강릉대지, 그 대학이 뭘 하겠는가 라고 생각할지 몰라도 그렇지 않다. 좋은 교수 2~3명만 있으면 학교 위상을 많이 올릴 수 있다. 이렇게 해서 졸업한 학생들을 강원도에 취직을 시키고, 이렇게 하면 우리 실력을 얼마든지 올릴 수 있다. 꼭 서울에 산다고 해서 사람의 능력 생기는 것은 아니다. 지방에 있다고 해서 생길 능력이 안 생기는 것도 아니다. 하려는 의지만 있으면 할 수 있다.

전상인=발등에 떨어진 중요 현안 중 하나가 국회에서 지방의 대표성 약화다. 헌법재판소의 국회의원 지역구 인구편차 조정 문제가 제기돼 농어촌 지역에서는 국회의원 숫자가 줄어들게 돼 있다. 인구가 줄어드니까 자연히 중앙무대에서 정치적 대표성이 약해지는 이 현상을 일각에서는 미국식 양원제로 해결하자는 얘기도 한다.

조순=결국은 인구가 줄어드니까,대표성도 줄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양원제를 얘기했는데,국회의원들이 그렇게 문제제기를 한번 해 봐야 한다고 본다.물론 처음에 그런 말 한마디 한다고 되는 건 아니다.자꾸 해야 한다.

 

전상인=강원도가 똘똘 뭉쳐서 힘을 발휘해야 하지만 국회의원 300명 중 강원도 의석은 9석이다. 모두 새누리당 소속이고 도지사는 새정치민주연합(더불어 민주당)이다. 강원도가 서울에 구걸하지 말자고 하려면 현실적으로 똘똘 뭉칠 힘이 있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다는 것이다. 4월 총선에 임하는 강원도 유권자의 판단에 도움말을 준다면.

▲ 조순 전 경제부총리

조순=원론적인데 ‘이 사람을 선택하면,이 사람이 이런 일을 할 것이다’라는 부분에 기대와 판단을 가지고 투표해야 한다. 그게 똑똑한 투표다. 그렇기 때문에 국회에서 하는 행동도 잘 봐야 한다. 그런데 우리는 그렇지 않다. 강원도 만이 아니라 전국적으로 다 그렇다. 내가 투표를 하는데 이를테면 새누리당이면,또는 새정치민주연합이면 더 좋다라고 한다. 그건 곤란하다. 사람이 달라지면 의정활동도 달라지고,내용도 달라진다는 생각을 가지고 투표를 해야 한다. 정치와 국민이 각기 똑똑치 못하다. 정치는 똑똑한 정치를 못하고, 국민은 똑똑한 대의원을 선출하지 못하는 것이다. 신중하고 합리적 투표는 나라 다시 만들기의 하나다.

전상인=2018 평창 동계올림픽이 목전에 다가왔다. 평창 올림픽이 강원도 발전에 좋은 기폭제가 되겠는가.

조순=난 동계올림픽이 잘 치러져 나라가 잘됐다는 얘기를 들어본 적이 없다. 강원도가 왜 그걸 그렇게 열정적으로 유치했는지…. 과연 어떤 일이 있었는지….(모르겠다). 몇 사람들이 자기 네들의 이익을 위해서 의견을 끌어 모았다고 본다. 하지만 어찌됐던 이제는 잘 해야 한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있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가 평창에 대해 분산개최를 할 생각이 있다면 도와 드리겠다고 할 때 여기서는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난 그게 잘못이었다고 본다. 무슨 말인지 한번 알아 보자고 해서 우리가 그곳을 한번 방문하거나 이쪽으로 오게 해서 만났어야 한다. 한번 만나봐서 그 사람들이 우리의 무엇을 염려하는지를 알아보고,원조를 구할 게 있으면 원조를 구해야 했다. 그게 똑똑하고 합리적인 거다. 저쪽(IOC)에서 그렇게 하라고 한데는 이유가 있을 것 아닌가. 그 이유를 알아보고 거절을 하던지,수용을 하던지 해야 했다. 난 처음에 (분산개최 제안이)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는데 한마디로 거절했다. 참 실망했다.

전상인=또 다른 현안이 통일 관련 이슈다. 박근혜 대통령은 ‘통일 대박론’을 이야기 했다.

조순=통일은 민족이 모두 열망한다. 통일이 대박이 되기 위해 필요한 절대 조건은 북한 주민들이 이를 열망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되게끔 우리가 보여줘야 한다. 독일은 그렇게 했다. 그래서 1989년 베를린 장벽이 허물어지고 1990년 통일이 됐다.

전상인=박 대통령은 비무장지대(DMZ) 세계생태평화공원 조성 구상을 발표했고 경원선 복원 등의 이벤트를 했다.

조순=철도 복원은 통일된 후에 얼마든지 하면 된다. 왜 그런 걸 하는지…. 우선 그걸 하자면 남·북한의 이산가족이 자유롭게 만날 수 있는 분위기 조성 등이 필요하다. DMZ는 한국에 보배와 같은 존재다. 그걸 자꾸 개발하려 들지 말아야 한다. 지금 아주 좋다. 개발은 제발 좀 그만 뒀으면 좋겠다. 금강산 관광 재개도 좋은 일이다. 사람들이 북한과 왕래하고 하는 것은 통일의 전제다. 친척,형제를 만나는 것처럼 따뜻하게 만나고 그래야 한다.

전상인=지금 야권이 난리다. 어떻게 재편될지,안철수 신당의 미래도 궁금하다.

조순=(현재 야권을)야권이라고 할 수 없다. 그렇게 민심을 모르고,고집을 부리고…. 정치는 그런게 아니다. 국민하고 가까워야 한다. 중국 고전에 밝은 도를 밝게 만들고,백성과 친하게 하고,백성을 새롭게 하라는 글이 있다. 정치의 도는 거기에 있다. 그게 쉬운 것은 아니다. 야권은 (분열)되게끔 돼 가는 것 같다. 안철수 신당은 얼마만큼 세력을 가지느냐,또 어떤 사람들이 합류하느냐,호남의 민심이 어떻게 가느냐가 중요할 것 같다.

전상인=미국 연방준비제도(Fed)가 기준금리를 인상하고,유가는 많이 떨어지고 있다. 거시적으로 국내외 경제는 어떨 것으로 전망하는가.

조순=금리 인상이 미국 경제에 도움이 되는지에 대해서는 미지수다. 유럽은 쇠퇴일로에 있다. 독일은 그나마 낫다. 하지만 수출의 70~80% 가까이가 역내(EU) 수출이다. 따라서 큰 성장은 바랄 수 없다. 영국은 EU 탈퇴 국민투표를 앞두고 있지만 꽤 잘 하고 있다. 성장률도 높고 잘 돼가고 있다. 중국은 경착륙을 한다던가 하는 우려는 없다. 7%(경제성장률)를 지킬지는 모르겠는데 갑자기 무너지는 일은 없을 것이다. 한국은 내년 3% 성장이 약간 어렵지 않나 생각한다. 물론 보다 전문적으로 데이터 분석 작업 등을 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난 3%를 달성하면 대성공이라고 본다.

전상인=현실적으로 젊은 친구들이 너무 많이 힘들어 한다. 신년을 맞아 젊은이들을 위한 덕담을 해달라.

조순=참 안타깝고 정말 가슴이 아프다. 좀 무리한 요구일지 몰라도 좀 굳건해졌으면 한다. 강해지고,용기를 잃지 말아야 한다. 뜻을 확실히 세우라. 송나라 주신중(朱新仲)이 인생오계(人生五計)를 얘기했다. 5가지 계획을 올바로 세워야 한다는 것이다. 첫째는 생계(生計)다. 내가 어떤 인생을 갖겠다 하는 그런 하나의 바람이다. 둘째는 신계(身計)다. 나는 어떤 몸을 유지하고,어떻게 몸가짐을 하겠다는 것이다. 셋째는 가계(家計)다. 나는 어떤 가정을 이룩하겠다는 것이다. 넷째는 노계(老計)로 노후관리, 다섯째는 사계(死計)로 어떻게 잘 죽을 것인가하는 문제다. 이런 생각을 가지고 마음가짐을 굳게 하라는 것이 무리한 요구일수도 있다. 포(抛)자가 늘어가게 만든 것은 기성세대가 잘못한 것이다. 젊은이들에게 위로가 안되겠지만 기성세대에 너무 뭘 바라지 말았으면 한다. 나는 나이기 때문에 갈 수밖에 없다는 그런 마음을 가지고, 생계,신계,가계,노계,사계를 생각하며 살았으면 한다.



-두분 오랜 시간 고생하셨다.조순 부총리님은 고향에 가끔 가시나.

조순=(예전에는)굉장히 자주 갔었는데 작년에는 한번밖에 못 갔다. 강릉에서 시제가 있기 때문이다. 앉아서 절은 못하지만 그래도 병은 없다. 그리고 강원서학회에도 애정을 가지고 있고,많이 참석했었는데 요즘은 못갔다. 강원도민일보의 정신을 좋아하고,높이 산다.

정리/진민수 jinminsu@kad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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