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후기 최고의 지리학자 고산자(古山子) 김정호(金正浩). 그가 200여 년의 시공을 뛰어넘어 다시 한반도 곳곳에 발자국을 남긴다. 영화를 통해서다. 공공의 적, 실미도, 한반도 등을 연출한 강우석 감독이 자신의 20번째 영화로 ‘고산자, 대동여지도’를 제작한 것. 고산자는 뛰어난 지도 제작자이자 탐험가였다. 지도 제작을 위해 한반도를 이 잡듯 뒤지며 청구도, 동여도, 대동여지도 등 빼어난 작품을 남겼다. 동여도지, 여도비지, 대동지지 또한 그의 역작.

최근 촬영을 마친 강 감독은 “(고산자가) 언제 태어났으며 언제 죽었는지 정확히 알 수 없고, 그냥 ‘사라졌다’”고 했다. 때문에 “(고산자가) 지도를 만들기 위해 전국을 누볐을 거라는 상상으로 영화를 만들었다”고 한다. 강 감독의 말처럼 고산자에 대한 기록은 그의 명성에 걸맞지 않을 정도로 거의 없다. 태어나고, 죽은 연대는 물론 본관과 신분, 고향, 주거지, 가계 등이 미상이다. 다만, 그가 조각에 뛰어난 평민 출신 장인이었을 것이라는 추측만 무성할 뿐.

고산자 김정호에 대한 후세의 평가는 ‘국토정보의 효율적이고 체계적인 이해를 돕기 위해 지도제작과 지리지 편찬에 매진한 학자이자 출판인’ 정도로 요약된다. 실제로 그는 ‘청구도 범례(靑邱圖凡例)’를 비롯한 여러 저서를 통해 “국토정보를 효율적으로 이해하려면 지도와 지리지를 동시에 이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런 그의 철학이 종합적으로 담긴 역작이 ‘대동여지도 14첩’. 망해가는 나라의 산하를 피와 땀으로 적신 그의 열정이 묻어난다.

고산자가 떠난 지 200여 년. 그가 남긴 지도에 새로운 선이 그어지고 터널이 뚫렸다. 뗏목을 타고 건너던 강줄기엔 다리가 놓이고 고속도로와 철도가 새로운 선으로 이어졌다. 산과 계곡, 바닷길에도 수없이 많은 이정표가 세워지고. 눈에 보이지 않는 길, 광통신도 무수히 깔렸다. 제2영동고속도로가 2016년 11월 개통된다. 서울∼양양 간 고속도로 완공도 멀지 않았다. 그러나 강원도는 아직 멀고 험하다. 이즈음, 고산자가 나타나 강원도를 어떻게 그릴지 몹시 궁금하다. 경기 충청 영호남만 돌고, 강원도는 길이 험해 다음 세기에나 온다고 하면? 영화 ‘대동여지도’에서 그 단초를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강병로 논설위원 brkang@kad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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