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불행 일본 침략 때문… 죄송한 마음에 기도를”
2008년 고성서 북녘 땅 보며 까닭없는 눈물 다시 한국행
모친 황해도 출신 한국 인연 깊어…“통일 후 북한서 기도”

▲ 강원도 최전방에 위치한 사찰인 도피안사에서 일본인 잇코 스님이 분단된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을 위해 기도하고 있다.

남북 분단의 상징적 건물인 북 노동당사의 폐허 유적과 남북을 길게 가르는 철책선이 드넓은 평야에 펼쳐져 있는 강원도 최전방에 위치한 사찰인 도피안사에 일본인 스님 한분이 거주하며 분단된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을 위해 기도하고 있다.

하루하루의 일상이 시계추 같아 지역 주민들에겐 이미 유명인사인 잇코(46·日晃) 스님이 그 주인공이다.

매일 같은 장소를,같은 시간대에,다이코(太鼓)를 두드리며 같은 모습으로 지나치지만 스님의 이름을 아는 주민은 많지 않다.

스님의 모습이 너무 진지하고 성스러워 말을 붙이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풍문으로 ‘일본인 스님이 한 분이 어머니와 함께 도피안사에 있다더라’라는 말을 들은 주민들은 그저 무슨 사연이 있겠거니 하고 생각한다. 부처님 탄신 2560주기를 맞아 일본인 스님의 사연을 들어보기 위해 도피안사를 찾았다.

간단한 인사를 마치고 ‘한국과는 무슨 인연이 있는지’,‘기도의 의미는 무엇인지’를 묻자 스님은 하나는 길게,하나는 단답형으로 대답한다.

단답형의 대답은 “기도의 내용은 누구에게도 말하면 안된다”이다. 잇코 스님이 속한 종파(일본산 묘법사)의 규율이란다.

고개를 갸웃하는 기자에게 “6·25 전쟁으로 숨진 혼령들을 위무하고 한반도의 평화를 위해 기도하고 있다 정도로 이해하면 된다”고 덧붙인다.

다음은 긴대답.

한국과 잇코 스님의 인연은 짧으면서도 길다.

짧은 인연은 스님이 지난 2008년 ‘제13차 한·일 불교인 평화국토순례행사(일주일 일정으로 부여 서울 철원 고성 등 돌아보는 일정)’에 일본 묘법사 스님 5명과 함께 참가한 인연이다.

일정 중반 무렵 잇코 스님은 고성 평화전망대에서 북녘 땅을 바라보다가 하염없이 눈물이 흐르는 경험을 했다.

멀리 있는 북녘을 바라보는데 까닭 없이 눈물이 쏟아졌다.

일정이 끝나고 일본에 돌아간 뒤 한국으로 가서 한반도의 평화를 위해 기도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묘법사는 기도가 필요한 곳에 직접 가서 기도를 해야 하기 때문에 한국으로 갈 수 있는 방안을 찾다가 같은 생각을 하고 계신 노스님 한 분을 알게 됐다.

그 스님의 주선으로 한국을 다시 방문하게 된 것이 2010년 6월. 첫 인연의 장소는 인제에 소재하고 있는 한국DMZ평화생명동산. 그곳에서 스님은 아침·저녁으로 평화를 위해 기도를 하고 낮엔 밭일을 하며 일과를 보내다 지난 2013년 12월,또 다른 인연이 닿아 철원 도피안사로 수행처를 옮겼다.

보다 긴 인연은 1941년 북한에서 태어난 스님의 어머니와 얽힌 인연이다.

스님의 모친은 일 교토대 공학부를 졸업한 우수기술자였던 아버지가 근무하던 황해도 진남포에서 태어났으나 해방이 되면서 가족과 함께 일본으로 돌아갈 때 기술자는 현지에 억류한 당시 북한 지역에 진주한 소련의 정책 때문에 아버지와 생이별하는 아픔을 겪었다.

해방 2년 후 일본의 가족들이 국제적십자사를 통해 부친의 생존여부를 문의했으나 10년 뒤인 1957년이 돼서야 6·25 전쟁 때 숨졌다는 답변을 받았다.

그런 가족사가 있었음에도 스님은 성장기간 동안 한반도에 관심이 없었지만 대학 졸업후 특별한 인연으로 출가하면서 죽음과 평화에 더 진지하게 생각하게 됐고,그런 인연이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신 땅,한국을 방문하는 ‘한·일 불교인 평화국토순례행사’에 참가하도록 이끌었다.

잇코 스님에게 철원은 지난 2013년 12월 수행처를 옮기기 전까지 전혀 모르던 곳이었다.

우연한 인연으로 철원에 와 보니 남북 분단의 아픔을 고스란히 안고 사는 주민들이 있고 6·25의 참상을 엿볼 수 있는 북 노동당사 등 전쟁 유적이 곳곳에 남아 있는 이곳이 한반도 평화를 기원하는 최적의 장소였다.

특히 분단의 상징인 철책선과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사찰이 도피안사이고 스님의 기도처인 노동당사 등 전쟁유적이 걸어서 갈 수 있는 곳이란 것도 기도처의 의미를 더했다.

잇코 스님은 남한보다 분단의 아픔을 더 고통스럽게 겪으며 살고 있는 북한 주민들의 아픔을 치유하기 위해 통일이 되면 북한으로 기도처를 옮길 생각이다.

지난해 5월부터는 같은 불제자의 길을 걷고 있는 모친이 도피안사에 함께 기거하며 기도 정진을 하고 있어 스님 개인적으로 위안을 받고 있다.

결혼을 허용하는 일본의 다른 불교 종파와는 달리 묘법사 스님들은 결혼을 하지 않기 때문에 인연에 얽매임이 없어 기도에만 정진할 수 있다.

이런 잇코 스님의 하루일과는 단순하다. 아침 4시에 일어나 예불 뒤 아침을 공양하고 오전엔 노동당사 인근,오후엔 동송읍 시가지를 돌며 위령기도를 하고 저녁 공양과 저녁예불 뒤 잠드는 생활을 365일 반복하고 있다.

잇코 스님은 “남북 분단 등 한반도의 모든 불행이 일본의 침략 때문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일본인으로 늘 죄송스러운 마음”이라며 “특히 요즘은 북한의 핵개발 등으로 인해 남북관계가 악화돼 한반도에서 전쟁이 나면 안 된다는 절실한 마음으로 기도하고 있다”고 말했다.

철원/안의호 eunsol@kado.net

저작권자 © 강원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