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암 고 김재순 전 국회의장]
의정단상서 옥살이까지
교양잡지 ‘샘터’ 창간인

▲ 김재순(사진 가운데) 전 국회의장이 재직시 (사진 왼쪽부터)김종필 자민련 명예총재, 김영삼 전 대통령, 김대중 전 대통령, 박준규 전 국회의장과 손을 잡고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본사DB

17일 별세한 우암 김재순 전 국회의장은 1923년 평양에서 태어났다.

1952년 서울대 경제학부를 졸업했다. 4·19 혁명과 5·16 군사정변을 전후한 격동기에 장면 총리의 민주당 시절 1960년 양구에서 제5대 국회의원에 당선되면서 정계에 진출했다.

국회의원으로 일하며 외무부 차관과 재무부 차관을 지냈지만 5·16으로 정치활동이 금지되며 의정단상에서 내려와 옥살이까지 해야 했다.

그뒤 민주공화당 소속으로 철원-화천-양구에서 제 6,7,8대 국회의원을 지냈다.

제 9대 국회의원으로 일하다 1972년 박정희 대통령이 단행한 10월 유신에 반발해 정계를 타의반 자의반 떠났다. 그뒤 노태우 정부시절이던 1988년 민주정의당 소속으로 철원-화천에서 13대 국회의원으로 정계에 복귀해 13대 국회 전반기 의장을 지내며 최고의 전성기를 구가했다.

이어 1992년 민주자유당 소속으로 같은 지역에서 14대 국회의원에 선출됐다. 같은해 실시된 대선에서 김영삼 대통령 만들기에 앞장섰지만 취임후 불어닥친 개혁의 칼바람 속에 1993년 3월 공직자 재산공개 파문으로 사퇴해야 했다.

당시‘토끼사냥이 끝나자 사냥개를 삶아 먹는다’는 뜻의 ‘토사구팽(兎死狗烹)’이라는 명언을 남기고 정치무대에서 사라졌다.

고인은 그뒤 1970년 자신이 창간한 교양잡지 월간 ‘샘터’에서 일하며 시종 은자의 삶을 살았다.

7선 의원으로 활동하며 콜롬비아 상하원 적십자대훈장(1988년), 페루 드레레이아스 공로훈장(1989년), 타이 최고백상대훈장(1990년), 대한민국 무궁화대훈장(1991년)을 받았다.

모교인 서울대 제15,16,17,18대 총동창회장으로 일했으며 2006년에는 ‘자랑스러운 서울대 인’에 선정되기도 했다.

애증이 교차하는 고 김영삼 대통령이 지난해 11월 서거한뒤 고인의 별세로 이뤄질 두 사람의 천상에서 만남은 어떨까.

서울/남궁창성 cometsp@kad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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