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남궁창성

서울본부 취재국장

지난 1일 일본한자능력검정협회는 일본 교토(京都)에서 한자박물관 겸 한자도서관을 개관했다. 이날 후쿠다 야스오(福田康夫) 전 일본 총리와 유흥수 전 주일 한국대사 등이 참석해 개관을 축하했다. 중국, 한국, 일본은 수천년간 한자문화권에 있다. 조선왕조실록이나 승정원일기도 한자로 쓰여진 세계적인 기록유산이다. 우리의 미래세대가 초등학교와 중학교에서 한자를 배우지 못하고, 선조들의 찬란한 기록과 그 정신을 체감할 수 없다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1970~80년대 중·고교에서 한문을 공부했던 필자는 지금도 고려시대 대문장가인 정지상(鄭知常)의 불후의 이별시 ‘송인(送人)’을 읊조리곤 한다. 또 당송 팔대가 중 한 명인 유종원(柳宗元)이 절대 고독을 그린 ‘강설(江雪)’을 한자로 써가며 인생을 생각하곤 한다. 이는 분명히 필자의 삶을 풍요롭게 하는, 우리가 조상들로부터 물려받은 소중한 문화 유산이자 자산이다.

한국, 중국, 일본 정상들은 2009년 중국 베이징(北京)에서 열린 제2차 한중일 정상회의에서 3국간 상설 사무국 설립의 필요성에 공감했다. 이듬해 3국은 협력 사무국 설립에 관한 각서를 공식 발표했다. 그리고 2011년 서울에 한중일 3국 협력 사무국(TCS)을 개설했다. TCS는 5년동안 3국간 협의체 지원, 연구 및 데이터 베이스 구축, 상호 이해증진 협력사업 등을 해오고 있다. 3국 외교관들이 사무총장을 윤번제로 맡아 운영하고 있는 TCS의 3국 협력 국제포럼, 재난대비 도상훈련, FTA 세미나, 과학기술 전문가 회의, 청년대사 프로그램 등은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2014년부터 해온 한중일 3국 언론인 교류 프로그램(TJEP)은 올해의 경우 3국 12개 언론사 기자 13명이 27일부터 내달 6일까지 일본 교토, 중국 시안(西安), 한국 경주에서 ‘3국 고도의 어제와 오늘 그리고 미래’를 주제로 진행중이다.

TCS는 올해 ‘中日韓 共同常用 808 漢字(중일한 공동상용 808 한자)’라는 소책자를 발간했다. 이 책은 한중일 3국에서 같은 모양에 같은 의미의 한자 808자를 소개하고 있다. 우리에게 익숙한 4개 음절의 한자 숙어도 정리했다. 한중일이 모두 같이 사용하고, 이해하는 한자 가운데는 화합할 화(和), 협력할 협(協), 통할 통(通), 공경할 경(敬), 합칠 합(合), 친할 친(親), 화평할 평(平), 믿을 신(信), 같을 동(同), 편안할 안(安), 다닐 행(行), 여럿 공(共), 힘 력(力) 등 808자에 이른다, 이들 한자로 만들 수 있는 단어 중에는 화합(和合), 협력(協力), 평화(平和), 동행(同行) 등 여러가지가 있다. 4자 성어에는 말을 안해도 마음과 마음으로 통한다는 이심전심(以心傳心), 서로가 같이 살고 같이 번영한다는 공존공영(共存共榮), 사귀어 유익한 세 사람의 벗이라는 익자삼우(益者三友) 등 다수다.

올 한중일 언론인 교류 프로그램에 참여중인 필자 등 3국의 기자들은 27일 밤 비가 촉촉히 내리는 교토 시내에서 저녁을 같이 하며 처음 만난 서먹함을 떨쳐냈다. 서툴고 짧은 중국어, 한국어, 일본어를 섞어가며 서로의 벽을 허물고 하나가 됐다. 말문이 막히고, 소통이 부족하면 기자 수첩에 한자로 필담을 나누며 서로를 조금씩 이해해 갔다. 필자가 묵고 있는 교토시청 앞 호텔 인근에는 혼노사(本能寺)라는 유서 깊은 사찰이 있다. 임진왜란이 끝난후 1607년부터 일본의 명치유신이 있었던 1868년까지 260년 간 한일 간 친선과 교린을 이어주던 조선통신사들이 사행길에 휴식을 취하고 가던 숙소로도 쓰였다. 1719년 통신사로 일본을 여행했던 신유한(申維翰·1681년~1752년) 선생은 해유록(海遊錄)을 통해 당시 선린의 역사를 생생하게 기록했다. 28일 이른 아침 혼노사의 뜰을 거닐며 한중일 3국이 불편한 현실을 극복하고, 열어갈 화합과 협력의 동북아 평화를 기원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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