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연극인 서로를 말하다]
공연창작집단 ‘뛰다’ 한·일 청소년 캠프
독도·위안부 등 선입견 극복
“과거보다 현실 충실하며 소통”
한국팀, 11월19일 일본 공연
10월 중 성인팀 합작 연극

▲ 2016 꿈다락 토요문화학교 한일 청소년 연극캠프가 지난 5일부터 9일까지 화천 공연창작집단 ‘뛰다’ 연습실에서 한국 일본 청소년 20여 명이 참여한 가운데 열렸다. 서영

“일본 친구들은 과거보다는 현재에 충실하려 했어요.” “지난 프로그램에서 예민한 문제를 많이 언급해 어색했는데 한국 친구들이 좋은 사람인 것을 알게 됐어요.”

8일 오후 화천에서 활동 중인 공연창작집단 ‘뛰다’의 연습실.

공연창작집단 ‘뛰다’의 3차 국제교류 ‘한·일 청소년 연극캠프’에 참여하기 위해 모인 한국·일본 청소년 20여 명은 3일간 서로에게 느꼈던 감정들을 허심탄회하게 털어놓았다. 참가자들은 또 한국과 일본의 지도를 각각 그려 놓고 서로 궁금했던 점,문제라고 생각되는 점을 적으면 다시 지도를 돌려받아 모국의 상황에 대해 청소년들이 다시 설명하고,이를 통해 느낀 점을 발표했다. 한 마디 한 마디가 끝날 때 마다 통역이 일일이 다시 설명하느라 진행은 더뎠지만 한국과 일본 어린 연극인들의 눈빛은 진지했다.

‘뛰다’는 올해 일본 돗토리현의 극단 ‘새의 극장’과 한일 합작 연극을 제작하는 프로젝트와 그 일환으로 ‘2016 강원 꿈다락 문화학교 한·일 청소년 연극캠프’를 진행 중이다. 지난 5일부터 9일까지 3박4일간 열린 한·일 청소년 연극 캠프는 화천지역 중·고교생으로 구성된 청소년 극단 ‘뜀뛰기’ 단원들과 일본 ‘새의 극장’ 산하 청소년 연극팀원들이 참여했다. 캠프 기간 독도,일본군 위안부 등 예민한 문제에 대한 이야기가 나올 때도 있었지만 한·일 청소년들은 누가 옳다,그르다의 입장이 아닌 서로의 생각 차이를 이해하려 노력했다. 뜀뛰기는 오는 11월 19일 일본 돗토리현 새의 극장 내 극장에서 ‘쌍둥이’라는 연극을 일본 청소년들에게 선보인다. 한 학생이 같은 재단 산하이면서 앙숙 관계인 다른 학교로 전학을 가면서 그 전에 갖고 있던 편견이 깨지고 그들을 이해하는 과정을 담은 극이다.

‘뛰다’가 준비하는 또 하나의 프로젝트는 ‘한일 합작연극’이다. ‘한·일 청소년 연극캠프’가 어린 연극인들의 프로그램이라면 ‘한일 합작연극’은 양국의 어른들이 함께 하는 공연이다. 시나리오부터 연습 공연까지 서로 다른 사상과 언어,습관을 넘어 하나의 작품을 만들어가는 과정은 험로를 예고한다.극의 제목을 정하는 일부터 쉽지 않다. ‘뛰다’가 정한 극명은 ‘시를 사랑하는,전쟁을 싫어하는 사람들의 모임(가제)’. 그러나 일본 극단 ‘새의 극장’이 내놓은 제목은 ‘시의 교실’이다.

태평양전쟁을 소재로 한 이 연극은 시나리오에 대해서도 양측의 인식과 입장은 팽챙하다. 우리나라는 일제 식민지 경험을 내세웠고,일본 측은 태평양전쟁 패배 후 패전국의 입장을 전달했다. 수년 동안 친분을 쌓으며 친해졌지만 민감한 주제 앞에 당황해 했다. 서로에 대한 무지가 노출되고 있었다.사실 이런 반응은 공연창작집단 ‘뛰다’도,일본 ‘새의 극장’도 예상하지 못했다. 대도시에서 활동하다가 지역으로 옮겨 정착한 극단이라는 공통점을 갖고 있는 두 집단은 워크숍 등을 진행하면서 지난 8년간 꾸준히 친분을 쌓아왔기 때문이다.배우 최재영 씨는 “친분을 걷어내고 테이블에 앉으니 우리는 서로 너무나 몰랐다”며 “한국은 1945년 이후의 일본 상황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했고,일본도 우리의 일제강점기에 대해 자세히 알지 못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나 자신 역시 태평양전쟁에 패한 일본에 대해서는 생각해본 적이 없다”며 “자신이 우리의 식민지 시대를 모르고 있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다는 사실에 괴로워 하는 일본 측 배우들도 있었다”고 전했다.

 

서로의 입장 차이를 확인한 두 극단은 작품 제작은 미뤄두고 한국과 일본에 대해 공부했다. ‘뛰다’ 단원들은 히로시마 원폭 현장을 전시하는 전시관을 견학했고 일본 새의 극장은 우리나라 독립기념관을 방문했다. 2년 간 공부 끝에 도달한 결론은 한국인,일본인 모두 ‘피해자’라는 점이다. 한국인은 일제 식민지 시대의 피해자였고,일본인 역시 패전국으로 만만치않은 피해를 봐야했다. 이후 두 극단은 허심탄회하게 자신들의 생각을 전달했고 이는 곧 한일합작연극에 녹아들었다. 극의 시대적 배경도 당초 태평양전쟁에서 태평양전쟁이 일어나는 계기부터 2016년 현재까지로 확장됐다.

광복절 다음날인 16일 ‘뛰다’는 일본으로 건너가 3주 간 일본 새의 극장 단원들과 합(合)을 맞춰본다. 이후 한국으로 돌아 와 각자 연습하다 9월 말 다시 일본에서 최종 리허설 후 10월 15일쯤 일본 돗토리현에서 열릴 예정인 ‘베세토 페스티벌’에서 한일합작 공식초청작으로 완성작품을 선보인다.베이징,서울,도쿄의 이름을 딴 ‘베세토 페스티벌’은 20여 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연극제다. 베세토 페스티벌 초연 후 한국과 일본에서 추가 공연을 할 가능성도 없지는 않다.

최재영 배우는 “역사적 사실이 바뀌지는 않지만 사실을 바라보는 관점을 좋다,나쁘다를 구분 지을 수는 없을 것 같다”며 “공연을 본 후 관객들이 생각이 변해가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오세현 tpgus@kad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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