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마을 운동, 흑백 역사 컬러로 바꿔놓았다”

 

소진광(사진) 새마을운동중앙회장은 “새마을운동은 우리 역사를 흑백에서 컬러로 바꿔 놓았다”고 평가했다.그는 성남의 새마을운동중앙회장실을 찾은 남궁창성 국장 일행을 만난 자리에서 “새마을운동은 21세기 발전의 키워드인 거버넌스,사회적 자본,지속 가능성의 시작이었고 지방자치 불모지에 직접 민주주의의 씨앗을 뿌렸다”고 말했다.


대담 = 남궁창성 서울본부 취재국장

■1970년대 초반 제가 접한 최고의 인쇄물은 ‘새마을’이라는 컬러화보였다.농촌의 경운기와 개량주택 사진을 보면서 ‘우리도 잘 살수 있다’는 희망을 키웠던 기억이 있다.

“저는 새마을운동 전후를 흑백과 컬러 사진으로 구분한다.1971년 ‘새마을’ 화보집이 나왔다.컬러로 종이 질도 정말 좋았다.새마을운동 자체가 흑백에서 컬러로 우리 역사를 바꿨다.”

■ 대학 교수에서 정부지원 단체의 장을 맡았다.

“제가 정부 친화적이지 못하다.‘학자들로 하여금 춤추게 하는 정권은 사악하다’는 소신을 갖고 있다.전공이 지역개발이어서 새마을운동을 공부했어야 했는데 안 했다.1990년 대학으로 간 뒤에도 새마을운동은 안 가르쳤다.국제 세미나에 참석하면 외국학자들이 ‘새마을운동 좀 설명해 달라’고 했지만 답을 못했다.그후 정치색깔 빼고,정치상황 고려하지 않고,순수하게 공부했다.내가 너무 편견을 가지고 있었더라.그후 ‘새마을운동을 재평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렇게 인연을 맺었다.”

■ 어떤 관점서 재평가해야 한다고 느꼈나.

“21세기 발전 현상을 설명하는 3가지 키워드가 있다.거버넌스,사회적 자본,지속 가능성이다.이를 가지고 개념 정립을 시작했다.협치라는 거버넌스,신뢰와 협동이라는 사회적 자본,환경이라는 지속 가능성 등의 관점에서 다시 봤다.제 강의를 들은 나라가 100여 개 국가가 넘는데 이런 말을 한다.‘1970년대 학계에서 거버넌스,사회적 자본,지속 가능성에 대해 겨우 이야기하기 시작했지만 우리는 실천했다’고 설명한다.그러면 새마을운동이 유효하냐? 효과적이냐? 이런 얘기를 할 필요가 없다.”

■ 새마을운동으로 근대화를 빨리 할 수 있었던 것인가.

“근대화라는 혁신을 일으킨 것은 도시,공장,직장 새마을운동이다.특히 공장 새마을운동이 가장 컸다.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추진하면서 도시주변에 공장이 들어섰다.하지만 제품의 불량률이 높아 ‘무결점 운동’을 했다.1970년 새마을운동이 시작됐다.당시는 성공하리라고 기대를 못했던 것 같다.도농격차가 너무 벌어지니까 농촌 달래기 차원에서 시작했다.정부가 가지고 있는 수단은 없고 재고가 많은 시멘트를 나눠줬다.그러면서 지침을 줬다.개별 가구별로 나눠 가지지 못하게 하고 공동사업을 위해 쓰게 했다.또 공무원들이 의사결정에 관여하지 못하게 했다.거버넌스(협치)의 씨앗을 뿌린 것이다.제 고향인 부여의 어느 마을에서는 주민들이 모여서 마을회관을 짓기로 했는데 땅이 없자 유수지를 메웠다.또 정부에서 준 시멘트가 부족하자 돈을 조금씩 걷고 누구 아들이 출세 했으니 시멘트 사서 보내라고도 했다.또 어떤 마을은 마을회관을 짓도록 땅을 내놓고,십시일반 돈을 거둬 땅을 구입하기도 했다.상향식 지역개발이었다.동시에 어떤 집은 어려우니까 공동 부담을 덜어주고 부자는 더 내도록 유도했다.의사결정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거버넌스가 구축됐다.”

 

 

■ 새마을운동 성과는 무엇이라고 보는가.

“마을 공동사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서로 신뢰하고 우리끼리 결정했으니까 능동적으로 참여하며 마을의 이익집단인 네트워크가 자생적으로 생겨나게 됐다.신뢰,참여,네트워크 등 사회적 자본의 대표적인 요소가 형성됐다.또 당시 마을의 평균 규모가 50가구 정도였다.사업을 공동으로 하니 직접 민주주의도 가능했다.새마을운동은 또 마을안길 청소와 마을하천 정비 등 지금 생각하면 환경, 지속 가능성에도 적극적이었다.새마을정신을 근면,자조,협동이라고 하는데 이건 새마을에 국한된 정신이 아니다.근면하지 않은 사람에게 어떻게 사회적 책임을 다하라고 하겠는가.근면은 개인이 갖춰야 할 덕목이다.협동하지 않는 사람에게 국회의원 해보라고 해봐라.소용 없다.협동은 공동체, 집단에 필요한 덕목이다.개인적 덕목인 근면과 사회적 덕목인 협동이 뭉치면 ‘셀프 헬프’ 즉 자조가 된다.공적개발원조(ODA) 역사가 2018년이면 70년이 된다.하지만 세계적으로 도움받는 나라는 계속해 받기만 하고 도움주는 나라는 계속해 주기만 한다.‘원조의 덫’에 걸린 것이다.우리 새마을운동은 누가 도와줘서 한 것이 아니다.가난하고 약한 사람들이 공동체를 형성해 부자가 됐고 강한 사람이 됐다.새마을운동은 주민에 의해,주민의 사업을,주민을 위해 한 것이다.”

■ 학계에서 지방자치 발전에도 많이 기여한 것으로 안다.최근 정치권과 시민사회에서 개헌논의가 활발하다. 개헌의 바람직한 방향이라면.

“여러나라 헌법을 분석해 봤다.지방자치에 관한 헌법적 근거가 이렇게 미약한 나라가 없다.그러니 정권마다 지방분권을 마치 자선 정도로 인식해왔다.개헌이 추진되면 대통령 임기 등 권력구조 보다도 자치단체의 종류와 고유 권한 등 이런 것이 분명히 명시되어야 한다.또 직접 민주주의가 가능한 기본 단위는 살려줘야 한다.동네 자치를 어떤 형태든 활성화하지 않으면 지방자치의 근본 정신이 이어지지 않는다.1970년대 지방자치를 실시하지 않았지만 새마을운동으로 풀뿌리 민주주의 씨앗을 온전히 보존하고 키워올 수 있었다.또 새마을운동을 하면서 혁신적인 사고를 하고,창의 행정을 통해서 지방행정도 개혁했다.”

■ 평창올림픽 성공개최 지원에도 앞장서고 있는 것으로 안다.

“평창올림픽조직위원회와 업무협약을 맺었다.1986년 아시안게임과 1988년 서울올림픽을 지원했고 1997년 외환위기 당시에는 ‘애국 가락지(금) 모으기 운동’을 펼쳐 위기극복에 앞장섰다.평창올림픽은 대한민국을 홍보하고 우리를 바라보는 지구촌의 시선을 괄목상대하게 바꿀 수 있는 좋은 기회다.반드시 성공해야 한다.우리 조직이 평창올림픽을 홍보하고,자원봉사 활동을 통해 성공 개최에 힘을 보탤 계획이다.” 정리/진민수

 

 

소진광 회장은

1955년 충남 부여태생이다.서울대대학원에서 지역개발로 행정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가천대 행정학과 교수로 재직하며 법정대학장과 행정대학원장을 지냈다.제11대 한국지방자치학회장과 새마을운동중앙회 이사를 역임하고 지난 3월부터 새마을운동중앙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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