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생 소박한 삶…대통령 당선 부모 선영 추동력 영향
최 전 대통령 현충원에 안치…내일 서거 10주년
부모묘소 하단 대명당에 최 전 대통령 이장 땐
추모 방문객 늘고 강원도민 자긍심 높아질 것

▲ 최규하 전 대통령 부처 묘소. 대전 현충원 소재.애석하지만 흉지에 걸렸다.

오는 22일이면 최규하 전대통령의 서거 10주년이 되는 날이다.고향인 원주의 역사박물관에서 최규하 대통령 10주기 추모전(8월 18일~9월 4일)이 열렸다.전시품은 대통령 재임 시의 승용차,개다리 소반,양은 도시락과 냄비,끝이 부러진 가위,그리고 고무신 등이었다.둘러보니 소박하고 소소한 일상의 물건들이 청렴한 일생을 보낸 그의 삶의 궤적을 엿볼 수 있었다.전용차마저 지금의 모습과 견주면 너무 촌스런 생김새였다.항간에 들리는 것처럼,사치스런 생활을 하는 지도층 인사나 혈세낭비의 국정운영을 하는 이들이 있다면 최 전대통령의 소박한 삶을 보며 바른 길을 갔으면 하는 생각이 든다.

1973년부터 살았던 서교동 사저는 건평 78평짜리의 2층 주택으로 남루할 정도의 모습이다.손님을 맞기에도 비좁은 4평 여의 거실에 50년을 사용한 선풍기,40년 된 라디오,30년을 넘게 사용한 냄비그릇,평생을 사용한 연탄보일러 등이 고위 공직자가 사용했던 검소한 일상적 삶의 도구들이었다.부인 홍기 여사는 재래시장에서 장을 봐다가 김장을 담그고,남편이 좋아하는 식단을 차렸다.청와대 시절에도 코디를 해주는 사람없이 이전부터 다니던 단골미용실을 이용했다고 하니 ‘부창부수(夫唱婦隨)’란 이 분들에게 어울리는 말인 듯싶다.

최 전대통령이 정치적으로 어떤 평가를 받건 그는 강원도민에게는 특별한 의미를 남긴 분이다.선거라는 제도가 있는 한 대통령 직선제나 의원내각제나 강원도 출신으로 국가의 수반이 되는 일은 상당히 요원한 노릇이기 때문이다.그래서 그의 선영을 살펴보면서 그의 삶도 회고해 보는 것은 강원도민에게 남다른 의미가 있을 것이다.

▲ 최규하 전 대통령 부모님 묘소. 원주 봉산동 소재.부친은 1973년에 별세하셨다.최규하가 국무총리를 역임하고 대통령이 되는 데 결정적인 추동력을 주었다.총리를 역임한 분들의 선영보다 풍수파워의 등급이 높다.묘소 하단에 엉청난 대명당이 비어있다.부친을 이곳에 모셨더라면 최 대통령이 군부세력에게 호락호락 밀리지는 않았을 것이다.

최 전대통령은 1919년 원주읍 옥거리에서 태어나 3세 때 화천리(현 봉산동)로 이사했다.생가는 치악산이 병풍처럼 둘러섰고 앞으로는 봉천(鳳川)이 흐르는 곳이다.이곳에서 조부로부터 기본적인 한학(漢學)을 배우며 유교적 가풍 속에서 자라다가 1926년 원주보통학교(현 원주초교) 2학년에 들어갔다.어린 시절 그의 성품은 온화하고 의젓했으며 글짓기 솜씨가 뛰어났다고 한다.

학창시절엔 교사 되기를 꿈꾸며 서울의 경성제일고보(경기고)로 진학한다.동창들은 공부밖에 모르는 책벌레로,천재형이 아닌 노력파로 회고한다.최규하가 졸업한 경기고 33회에는 민관식 국회의장(대행),이영섭 대법원장이 있다.짧은 기간이지만 3명의 동기동문이 대한민국 3부의 수장이 되는 진기록을 세우기도 했다.학창시절 어문학에 뛰어났던 그는 일본 동경고범에서 영문학을 전공하여 훗날 생애의 많은 부분을 외교무대에서 보내게 되는 기초를 닦았다.해방 이후 그는 잠시 서울대 교수를 지냈다.1946년 식량청의 관리로서 관계에 입문했다.1951년 영어에 능통한 그는 외무장관 변영태에게 외무부 통상국장으로 발탁되어 외교관의 길을 걷게 된다.1959년에는 외무부 차관과 장관 직무대행을 맡았다.4·19혁명 이후 공직을 사임했다.박대통령은 이승만 정권시절의 관료였던 최규하를 좋아하지 않았다고 한다.그러나 당시 이동원 장관의 강력한 천거로 말레이시아 대사로 기용되었고 1967년 외무부장관,1971년 대통령 외교담당 보좌관을 지냈다.1976년에 국무총리를 맡고 재임 기간 중인 1979년 10.26 사태를 맞게 된다.

▲ 최규하 전 대통령 조부모 묘소. 원주 호저면 소재. 후손들이 유족하게 사는데 부족함이 없는 혈처다.최규하의 관로에 많은 도움을 주었을 것이란 풍수적 판단이다.

10·26사태로 인한 대통령의 서거로 당시 국무총리였던 최규하는 대통령 권한대행이 되었고 그 해 12월 6일 통일주체국민회의에 의한 대통령 선거에서 10대 대통령으로 당선된다.그는 12월 21일의 취임사에서 “(전임 박대통령의 잔여임기인 5년을 다 채우지 않고) 1년의 기간 안에 국민의 다수가 찬동하는 헌법을 마련하고,그 헌법에 의한 새로운 정부가 들어서길 바란다”고 말했다.개인적인 정치적 욕심 없이 국가의 면모를 일신하기 위한 방안이었다.그러나 그 해 12.12사태라는 군부의 하극상이 생겼고,이듬 해인 1980년 5월에는 광주민주항쟁이 발생한다.취임 시 천명했던 1년도 채우지 못한 채,8개월 만에 전격 사임한다.헌법개정의 약속도 물거품이 되었다.퇴임 후는 국정자문회의 의장을 지냈고,강원대학교에서 명예법학박사 학위를 받았다.2006년 향년 88세로 서거함에 따라 그의 대통령직 하야에 얽힌 군부의 외압 여부는 역사의 미궁 속으로 빠지게 되었다.

▲ 손건웅(孫健雄) 풍수유람가

·춘천고등학교·강원대학교 졸업
·네이버카페 ‘동강의 풍수유람’ 운영
·저서 ‘세상을 풍수로 보다’ 외 1권

요즘 SNS상에 한 인문학자의 ‘내가 바라는 대통령’이란 글이 화제다.정치,못 해도 괜찮다.상식만 지켰으면 좋겠다.경제,걸림돌만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안보,악용하지만 않았으면 좋겠다.외교,망신 행보만 안 했으면 좋겠다.이런 기준이라면 최규하 전대통령도 꽤 괜찮은 대통령이었던 것 같다.

#부인 홍기 여사가 별세하자 호저면 선영에 모셨다가 2년 후 최대통령과 함께 대전현충원으로 이장해 모셨다.

# 최 전 대통령 부처(夫妻)를 부모님 하단으로 이장해 모신다면 그를 추모하는 방문객들도 많아지고,도민들의 자긍심도 높아질 것이다.형식논리에 실질이 훼손되어서는 안된다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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