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예병일

연세대 원주의과대 교수

필자는 작년부터 대학에서 ‘말하기’에 대한 수업을 하고 있다. 첫 시간에 과목소개를 하면서 말을 하는 목적이나 때와 장소에 따라 말하기 방법이 달라져야 한다는 걸 강조하곤 한다. “나라를 위해 봉사하겠다는 마음으로 국회의원에 출마하신 분들을 만나보면 개인적으로는 대부분 훌륭하신 분들이다. 이 분들이 국회의원 배지를 단 후에는 국민들로부터 비판을 받는 경우가 많다.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이런 주제로 토론을 하면 신뢰감을 못 주기 때문이라는 결론에 이르게 되는 경우가 많다. 세월호 사건이 발생했을 때 대통령이 7시간 동안 뭘 했는가에 대해 침묵을 지켜오던 청와대는 SBS의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 이 내용을 방송하기로 한 바로 그 날, 대통령의 행적에 대해 소상히(?) 공개를 했다. 이 내용을 보니 크게 두 가지 의문이 들었다.

첫째, 왜 이 내용을 1년 반이 넘는 기간 동안 감추어 온 것인가. 둘째, 김기춘 전 비서실장은 국회 답변 중에 대통령이 7시간 동안 어디에 계셨는지 모른다는 이야기를 했다. 대통령이 청와대 안에 있었는데 비서실장이 그걸 모른다는 게 말이 되는가. 하기야 이 분은 국회에서 대통령 연설문이 유출되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라 했지만 불과 몇 시간 후에 대통령이 직접 연설문을 유츨했음을 실토하기도 했다. 내용을 몰랐건, 알면서 오리발 내밀었건 국민들은 ‘역시 정치인들은 믿을 수 없어’라는 결론에 이를 수밖에 없다.

추미애 민주당 대표는 영수회담을 제안했다가 대통령이 이를 받아들이자마자 취소하기도 했다. 나름대로의 입장이야 있겠지만 국민들이 보기에는 국민을 위한 정치는 사라지고 사리사욕을 위한 정치만 남아 있다는 생각을 가지게 된다. 과거에 김병준 정책실장이 교육부총리로 내정되자 킬러로 나섰던 국회의원 이주호는 훗날 교육과학기술부 장관으로 내정되었을 때 자신이 김병준 교육부총리 내정자에게 제기했던 것과 똑같은 의문이 제기되자 ‘죄송합니다’라는 말 한 마디를 남기고 장관 자리에 올랐다. 세월이 지나 ‘김병준 국무총리’라는 말이 나왔는데도 입 다물고 가만히 있는 걸 보면 달면 삼키고 쓰면 내뱉는 대한민국 정치인의 수준을 보여주는 듯하여 씁쓸하다.

대통령과 여당의 지지도가 떨어져도 야당의 지지도는 올라가지 않는 걸 보면 정치인들이 국민들에게 신뢰를 받는 일은 당분간 일어나지 않을 듯하다. 단지 선거 때 최선을 선택하는 게 아니라 최악 대신 차악을 선택하는 것에서 나타나는 결과를 두고 정치인들이 자기식대로 해석하는 일만 있을 뿐이다. 스티브 잡스는 새로운 제품이 나올 때마다 수백명의 청중을 모아 놓고 제품설명회를 개최하곤 했다. 그의 발표내용을 보면 결코 다른 회사의 제품이나 자신의 회사에서 만든 과거 제품에 대해 비판을 하지 않는다. 그러나 대한민국 정치인들은 막말을 하여 매스컴에 한 번 뜨는 걸 목적으로 하는 것처럼 서로 비난을 하면서 국민들의 신뢰를 잃는 일이 일상이 되어 버렸다. 국민들이 정치인들을 신뢰하기 위해서는 엄청난 노력과 시간이 필요하겠지만 지금부터라도 서로 신뢰할 수 있는 관계를 만들어 가도록 노력하시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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