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희경

춘천지법 기획공보판사

2016년 8월의 어느 날.춘천지방법원 202호 법정에서는 특별한 재판이 열렸다.피고인석에는 5명의 변호인단이 피고인과 나란히 앉아 재판이 시작되기까지 분주히 소송기록과 증거기록을 뒤적이고 앞으로 열릴 재판에 대한 전략을 짜고 있었다.검사석에는 5명의 검사가 피고인에 대한 혐의를 입증하기 위한 증거를 최종적으로 검토하고 있었다.

“지금부터 피고인에 대한 재판을 시작하겠습니다.”판사의 개정 선언과 함께 그날의 형사재판은 시작되었다.쟁점은 피고인이 이혼한 전처의 집에 침입하여 그녀를 폭행했는지 여부였다.증인은 3명.피해자인 전처,그 장소에 같이 있었던 그녀의 딸,딸의 112 신고에 따라 출동한 경찰이었다.“검사,변호인 각각 증인신문을 시작하시죠.”판사의 안내에 따라 검사와 변호인의 날선 공방이 시작되었다. “증인(피해자)은 잦은 외출을 하고,집안 일 돌보는데 소홀하여 피고인이 이혼하게 된 것이었죠?”변호인의 질문이 있자마자 검사는 손을 들고 이의를 제기한다.“재판장님 이의 있습니다.지금 변호인은 이 사건과는 전혀 무관한 피해자의 이혼 경위에 대해 묻고 있습니다.”

검사의 촘촘한 유죄 입증과 이에 맞서는 변호인의 날카로운 법리 공방이 이어졌던 이날의 재판은 다름 아닌 ‘춘천법원과 함께 하는 사법캠프’에 참가한 고등학생들이 벌인 형사모의재판이었다.재판을 진행한 법관은 춘천지법 제3기 시민사법참여단의 위원으로서 퇴직한 교장선생님들이었다.만약 방청석에서 미처 아이들의 앳된 얼굴을 보지 못했더라면,이날의 재판이 모의재판이었는지 눈치 채지 못했을 수도 있다.실제 형사재판 못지않은 치열함과 진지함이 살아있었기 때문이다.

이렇듯 법원은 재판 뿐 아니라 법교육의 일환으로서 중고등학생이 참가하는 모의재판,찾아가는 법률강연,법원 견학 프로그램과 봉사활동 등 시민과 함께 하는 열린 법원으로서의 역할을 넓혀 가고 있다.그런데 이 모든 것을 처음부터 기획하고 논의하는 주체 역시 시민이다.춘천지법의 ‘시민사법위원회’는 매년 4월 총회를 열어 1년 동안의 법원과 지역 사회의 소통을 위한 여러 방안을 법원과 함께 논의한다.이렇게 마련된 여러 프로그램에는 40여 명의 ‘시민사법참여단’이 판사와 함께 직접 참여하여 만들고 있다.

실제 재판업무에서도 시민의 역할은 매우 크다.법원은 매년 지역 사회의 다양한 시민들을 민사와 가사 분야의 ‘조정위원’으로 위촉한다.이렇게 위촉된 조정위원은 실제 민사,가사재판의 조정절차에 직접 참가하여 원고와 피고에게 합당하고 원만한 조정안을 제시하고 협의한다.조정위원은 오랜 기간 지역 사회의 다양한 사정을 잘 알고 있을 뿐 아니라,법무사·노무사·건축사·교사·자영업 종사 등 여러 분야의 경험과 경륜이 있기에,형식적인 법논리만으로는 미처 헤아리지 못했던 분쟁 해결의 실마리를 찾아 궁극적인 해결책을 모색한다.

아울러 ‘위탁보호위원’은 소년재판에서 위탁보호 처분을 받은 아이들을 맡아 이들이 학교와 가정생활을 잘 하고 있는지,고민이나 힘든 점은 없는지 확인하고 상담하는 멘토 역할을 한다.이 역시 지역 사회의 다양한 경험과 경륜을 쌓은 시민들로 구성된다.

오늘날 법원은 이와 같은 시민들의 참여와 노력이 있기에 가능하다.법정과 판사실에서 뿐 아니라 지역 사회의 시민들과 함께 논의하고 호흡함으로써 더욱 좋은 법원을 만들 수 있다.시민은 좋은 재판을 하는 법원,지역사회와 소통하는 열린 법원이 되기를 누구보다 바라기 때문이다.그 관심과 열정 안에서 시민과 함께 하는 법원의 내일을 기대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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