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속으로] 태백 장성광업소 채탄 현장
체감온도 40도 온몸 땀범벅
계속되는 폭음에 귀가 멍멍
탄 가루에 시야 확보 어려워
가스유출·폭발 위험 초긴장
석공 폐업에 생계 막막 한숨

▲ 광원들이 채탄작업을 하고 있다.

산전수전 다 겪고 인생의 끝에서 마지막으로 찾아간다고 해 이름 붙여진 ‘막장(광산이나 탄광 갱도 막다른 곳)’.사회에서 ‘막장’은 ‘갈데까지 간 참을 수 없는 상황’이라는 절망의 의미로 해석하지만 유명강사로 활동중인 조관일 전 석탄공사 사장은 ‘숭고한 산업현장이자 진지한 삶의 터전,계속전진해야 하는 희망의 상징’이라고 규정했다.생사를 넘나드는 이곳에서 ‘검은 노다지’ 석탄을 캤던 광부들은 한때 고도성장을 일궈낸 영웅이었다.하지만 정부의 석탄산업합리화 정책으로 침체를 거듭하면서 잊혀진 존재가 됐다.정부의 석탄공사 폐업 조치로 수년 내 탄광이 문을 닫으면 ‘광부’라는 두글자는 영영 사라진다.예나 지금이나 여전히 희망을 캐고 있는 그들의 삶 속으로 들어가봤다.
 

 

13일 오전 8시30분 태백 장성광업소 장성갱구.영하의 강추위 속에서 짙은 회색 작업복 차림에 안전모를 쓴 광원들이 새하얀 입김을 내뿜으며 삼삼오오 모여들었다.채탄작업에 투입되는 오전 근무조다.근무는 하루 2교대(갑방 오전 8시30분∼오후 4시30분,을방 오후 4시30분∼밤 12시30분).추위에 몸을 잔뜩 웅크린 채 갱구 안으로의 길을 재촉하는 기자에게 이재학(59) 안전감독실 주임은 “이제 곧 추위가 그리울거예요”라고 의미있는 말을 던졌다.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지하로 내려갈수록 후끈한 열기가 올라왔다.갱구 입구에서 걸어서 800m,수직 엘리베이터(케이지)를 타고 900m,다시 300m를 걸으니 약 2㎞ 지점에 다다랐다.평균 기온 33도,습도 85%,체감온도 40도를 훌쩍 넘다보니 온몸은 땀범벅이고 안전모 등불이 가리키는 곳을 제외하고는 암흑이다.갱내에서 광원끼리 마주치면 이들은 항상 ‘안전’이라는 경례구호와 함께 ‘수고하십시오’라는 말을 건넨다.인사 한마디를 건네는 모습에 힘이 솟는다.

다시 레일바이크 형태의 인차를 타고 수직으로 130m를 내려간 뒤 인차를 다시 갈아타고 1㎞를 더 들어가니 채탄작업장 입구가 보인다.입구에서 다시 경사도가 심한 철계단을 밟고 200m,걸어서 300m를 더 내려가니 기계음이 들린다.이재학 주임은 “이제부터 마스크를 쓰고 머리는 항상 조심하라”는 말을 건넨다.사방에 장애물이 놓여있어 발을 내딛기 조차 힘들고 천장 높이가 100~150㎝에 불과해 몸과 머리를 숙인 채 걷다보니 목과 허리에 뻐근함이 몰려온다.두통에다 100m를 전속력으로 달린 것 처럼 숨이 가쁘다.200m를 더 들어가니 채탄작업장이 나타났다.입갱한지 1시간만이다.

오전 9시30분.4명이 한팀을 이뤄 석탄을 캔다.10년차 이상의 숙련된 광원 2명이 조장을 맡고 나머지 2명이 보조역할을 한다.장성광업소는 국내 석탄 중 50% 이상을 생산하고 있다.한 광원이 착암기로 석탄원석에 구멍을 내고 폭약을 설치한 뒤 ‘발파합니다,발파!,발파!’를 외친다.‘쾅,쾅,쾅’ 폭음과 함께 탄층이 무너지면서 채탄장은 전쟁터를 방불케했다.요란한 기계음과 폭음에 귀는 멍멍하고 쉴새없이 뿜어져 나오는 탄가루에 눈을 뜰 수 조차 없다.또 다른 작업장에서는 레일을 따라 자동으로 움직이는 컨베이어벨트에 삽으로 연신 탄가루를 퍼담는다.채탄장에 들어온지 1시간도 채 안돼 바깥 세상이 그리워진다.발파작업이 계속 진행되자 16년차 조장 조민욱(43)씨가 막내 조원에게 “가스폭발과 연소사고,가스유출로 인한 질식 등 위험상황이 도사리고 있는 만큼 막장 내에서는 항상 긴장의 끈을 놓으면 안된다”고 조언했다.

▲ 갱내 천장 검은 봉지에 담겨있는 점심.

낮 12시.점심시간인데 점심을 먹는 광원은 단 한명도 없다.이재학 주임에게 물으니 “기자님은 탄가루 날리는 이곳에서 밥을 먹을 수 있겠어요”라고 말했다.맞는 말이다.점심을 먹기에는 매우 열악한 환경이다.그래서 광원들은 집에서 싸온 도시락을 채탄장에 들어가기 전 미리 먹는다.밥은 절반만 먹고 나머지 반은 일을 마친 후 먹는다.광원들은 채탄장에서 약 200m 정도 떨어진 곳에서 휴식을 취하며 점심시간을 보낸다.이곳 천장에는 검은봉지가 줄줄이 매달려있다.도시락이다.갱구에 쥐들이 많아 고안해 낸 노하우다.채탄작업장에도 얼음물을 담은 검은봉지가 곳곳에 놓여있다.광원들은 얼음을 꽝꽝 얼려 출근할 때 가지고 온다.신문지에 싸서 검은봉지에 넣어두면 얼음이 더 늦게 녹는다.30도가 넘는 기온인데도 아직 얼음이 녹지 않았다는게 신기할 따름이다.광원들은 ‘우리 아이가 이번 시험에서 1등을 했어’ ‘주말에 가족들과 여행갈꺼야’ ‘일 마치면 술한잔 할까’ 등 여느 아버지들의 이야기로 웃음꽃을 피웠다.정부가 석탄공사를 폐업하는 구조조정 방안 얘기가 나오자 광원들의 얼굴은 어두워졌다.조민욱 씨는 “가족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다가도 일자리를 잃는다는 생각을 하면 잠이 오지 않는다”며 “중학교,초등학교에 다니는 딸 2명을 어떻게 키울지 막막하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오후 3시30분.고된 하루 일과를 마치고 갱밖으로 나간다.“수고하셨습니다”라는 격려의 말을 서로에게 건넨다.탄가루로 얼굴과 작업복은 시커멓게 변했지만 세상에서 가장 듬직한 아빠의 모습이다.고된 일상이지만 이들에게는 꿈과 희망이 있다.한 어깨에는 가족의 생계를,다른 어깨에는 나라의 생존을 짊어지는 광부들의 모습이 오늘따라 더욱 듬직하고 자랑스러운 산업전사로 비춰진다. 김우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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