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홍수의 시대,사람들이 헷갈리기 시작했다.판단이 서지 않는다고 한다.‘잊힐 권리’와 ‘잊지 말아야 할 것’을 놓고 벌이는 논쟁.이것은 단순히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다.정보를 어떻게 대하고 처리할지에 관한 문제다.그러나 말처럼 쉽지 않다.공유된 정보에 대한 ‘잊힐 권리’가 사적영역이라면 ‘기억하기(잊지 말아야 할 것)’은 공동체에 부여된 의무이자 책임이기 때문.

논쟁은 SNS와 인터넷이 활성화 되면서 시작됐다.페이스북 등 각종 온라인계정에 남겨진 사진과 글이 개인 혹은 사회문제로 비화되면서 이를 ‘삭제’해 달라는 주장이 빗발쳤다.2014년 5월 유럽사법재판소(ECJ)가 “인터넷에 게시된 기사가 사생활을 침해할 수 있다”는 판결을 내리면서 ‘잊힐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는 주장은 더욱 거세졌다.한국방송통신위원회도 지난 4월 ‘자기 게시물 접근배제요청권 가이드라인’을 제시했다.이용자 본인이 작성한 과거 게시물(글,사진, 동영상 등)을 본인이 삭제할 수 없는 상황에 있을 때 게시판 관리자에게 글 삭제를 요구할 수 있는 ‘자기게시물 접근배제요청권’을 제도화 한 것이다.

그럼에도 논란은 여전하다.인터넷에 올린 글이나 사진, 동영상 등으로 피해를 보지 않도록 하기 위해 게시물 삭제 등 ‘잊힐 권리’를 보장하고 있지만 공익적 목적의 게시물은 예외다.한국법제연구원도 최근 “국내법상 잊힐 권리의 보호범위에 한계가 있다”고 했다.연관 검색어 삭제 등에 대한 법적인 근거를 찾기 어렵다는 것이 가장 큰 이유.개인의 프라이버시를 침해한다고 보기 어려운 정보까지 ‘사람들에게 보이고 싶지 않다’는 이유만으로 삭제·차단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는다.

논쟁이 가속화 된 데는 역설적이게도 국정농단의 한 축인 최순실 씨의 딸, 정유라의 역할이 컸다.‘네 부모를 원망해.돈도 실력이야’라는 인터넷 글이 회자되면서 ‘소셜 미디어를 통해 올린 글이나 발언’을 염려한 네티즌들이 ‘흔적 지우기’에 본격적으로 가세한 것.이런 영향으로 악성댓글과 사진,동영상을 비롯한 인터넷 기록을 삭제해주고,죽은 사람의 인터넷 흔적을 청소하는 ‘디지털 장의사’가 미래 직종으로 떠올랐다.그러나 흔적을 지운다고 모든 기억이 다 사라질까? ‘지움’과 ‘보존’,‘자기 책임성’에 대한 논쟁이 더 필요한 때다.

강병로 논설위원 brkang@kad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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