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년대담] 역사가 이덕일 선생
조선 500년의 버팀목 ‘왕권’과 ‘신권’의 견제
과거식의 획일적인 정권 저지 당한 것이 촛불정국
박근혜 대통령 '천명' 등져 스스로 탄핵 자초한 것

정유년(丁酉年) 아침이다.혼돈에 휩싸였던 병신년을 보내고 새해를 맞았다.역사는 거울이다.새해 아침 역사학자 이덕일 선생을 만나 2017년 우리의 민낯을 들여다 봤다.역사를 과거로 되돌리려 했던 집권자와 환관과 내시를 자처했던 권력의 하수인들 그리고 온갖 잇속을 찾아 날아 들었던 모리배들.미래는 희망이다.메시아는 아니어도 우리는 어떤 지도자를 선택해야 하는지 역사에게 물었다.신년 대담은 강원도민일보 서울본부 남궁창성 취재국장이 지난 28일 오후 서울 마포 한강변에 자리한 이덕일 선생의 연구소를 찾아 진행됐다.
 

 

대담 = 남궁창성 서울본부 취재국장

-역사를 보면 흥망성쇠를 알 수 있다(以古爲鑒 加知興替)고 했다.지난 한해 나라가 혼란했다.

“우리는 선진화된 사회다.진보정권 경험도 했고 앞으로 갔는데 박근혜 정권을 움직인 사람들은 70년대 유신방식으로 사회를 이끌어 가려고 했다.안 맞는 것이었다.그 괴리가 폭발한게 촛불정국이다.이승만,박정희,김일성,세 사람을 합치면 몰라도 과거로는 못 끌고 간다.사회가 많은 부분에서 분권화됐다.과거식으로 획일적으로 가려고 하다가 저지를 당한게 촛불정국이다.임계점에서 폭발했다고 보면 될 것 같다.”

-붉은 닭띠 해다.역사에서 정유년은 어떤 해였나.

“정유독대(丁酉獨對)라는게 있다.1717년 숙종(肅宗)과 집권당인 노론을 대표하는 좌의정 이이명이 독대를 했다.우리는 세월호 참사 당일 박근혜 대통령이 7시간동안 도대체 뭘 했느냐고 묻고 있다.조선에서는 그것이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누굴 만나면 반드시 승정원 승지와 사관이 배석해 모든 걸 기록했다.임금이 뭘 했는지 모른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당시 세자가 장희빈의 아들인데 이를 갈아 치우는 모의를 했다.야당인 소론에서 선비 윤지완(尹趾完)이 시골서 관을 들고 와서 상소문을 올렸다.내용은 이렇다.‘임금도 잘못했고 신하도 잘못했다’.임금이 어떻게 재상을 사신(私臣),개인의 신하로 삼을 수 있느냐는 것이고 좌의정은 만인의 재상인데 사신이 될 수 있느냐는 것이다.조선시대를 왕명이면 끝나는 봉건사회로 아는데 천만의 말씀이다.선조들이 지금 우리를 보면 저렇게 미개한 사회가 있느냐고 질타할 것이다.환관만도 못한 사람들이 고위직에 올라 국민은 안중에 없고 오직 대통령을,대통령을 뒤에서 움직이는 최순실에만 온통 신경을 쓰다가 이 꼴이 됐다.조선의 독대는 정유독대와 1659년 효종(孝宗)과 송시열(宋時烈)의 기해독대(己亥獨對)를 합해 딱 두번이다.그 만큼 권력에 균형이 갖춰져 있었고 왕권도 제한적이었다.”

-촛불민심은 고장난 대의 민주주의에 대한 개혁을 요구하고 있다.조선조에 반정(反正)이 두 번 있었다.1506년 중종반정(中宗反正)과 1623년 인조반정(仁祖反正)이다.반정은 현 시국에 어떤 시사점을 주는가.

“임금은 하늘의 명,천명(天命)을 받은 것이다.세상은 하늘이 다스려야 하는데 직접 할수 없어 한 사람을 택해서 다스리게 한다는 것이다.왕 혼자 다스릴 수 없기 때문에 벼슬아치들을 활용한다.조선 선비들은 왕의 개인 신하가 아니라 천하를 같이 다스리는 동지라는 철학이 있었다.왕도 천명에 어긋나면 갈아 치울 수 있다는 것이 맹자(孟子)의 역성혁명(易姓革命)이다.혁명의 기준은 민심이다.조선조 반정이 민심이었냐 하면 그것은 다른 여지가 있지만 어쨌든 원칙이 있었다.촛불정국에서 제가 주목한 것은 한국식 대의 민주주의는 파탄났다는 것이다.선거날만 유권자가 주인이고 그날이 지나면 주객이 전도된다.백성들이 늘 정치에 참여할 수 없기에 대표를 뽑아서 해달라는 건데 대통령,국회의원이 선출되면 다 따로 논다.직접 민주주의를 일상적으로 반영하는 제도를 만들어야 한다.촛불정국이 지향해야 할 종착역이다.”

-시민사회에서 개헌요구가 많다.핵심은‘제왕적 대통령’을 개헌으로 분권하는 것이다.조선의 왕은 택군(擇君)이라는 말이 있는 것처럼 신권(臣權)의 견제를 받았다.

“개헌에 공감한다.하지만 지금이냐에 대해서는 우리가 하도 배신당한 경험이 많아 못 믿는다.조선에서도 대통령제적 요소와 의원내각제적 요소가 있었다.의원내각제적 요소는 ‘의정부 서사제(議政府 署事制)’다.서사제는 집행부서인 육조에서 의정부에 먼저 현안을 보고 한다.그럼 의정부에서 삼정승이 논의한후 통과된 것만 임금에게 보고한다.의원내각제적 성격이다.조선은 초기에 의정부 서사제를 했는데 태종이 정권을 잡고 육조 직계제로 바꿨다.임금에게 직보하는 형태다.세종(世宗)이 말년에 다시 서사제로 바꾼다.일이 너무 많았고 황희(黃喜) 정승이면 서사제를 해도 균형을 잘 이룰 것이라고 판단했다.지금 대통령 권한이 강하다면서 한쪽에서는 의원내각제하자고 하는데 지금 국회의원 수준 가지고 내각제 하면 어떻게 되겠는가.오히려 괜찮은 한 사람을 대통령으로 뽑는게 나을수도 있다.정치는 초일류 사람들이 해야 하는데 그렇지 않다.베스트 오브 베스트를 어떻게 충원할 것인가가 문제다.”

-부실한 참모 시스템에 대한 탄식도 있다.당(唐) 태종(太宗) 이세민(李世民)이 정관지치(貞觀之治)라는 평가를 받는 이유 가운데 하나로 위징(魏徵)과 같이 목을 내놓고 바른 말을 했던 참모가 있어 가능했다는 생각이다.우리는 정권을 ‘내시’,‘환관’,‘얼라’가 좌지우지한다는 지적을 받았다.

“조선의 승정원이 오늘날 청와대다.승정원이면 이런 일이 없다.지금은 환관 중에서도 C급들이 수석비서관을 해서 문제다.승정원 승지들은 선비라는 자부심이 있었다.임금과 같이 정치를 하는 것이다.개인 비서라는 개념이 없다.또 하나는 승정원에 ‘복역’이라는 권한이 있었다.뒤짚을 복(覆)에 거역할 역(逆)이다.임금이 부당한 명령을 내리면 봉투에 넣어 봉한뒤 임금에게 돌려주는 제도다.얼마전 최순실 국정농단 국조특위 청문회에서 이석수 전 특별감찰관이 ‘이 사람들 나중에 어떻게 감당하려고 그러냐는 걸 느꼈다’고 하지 않았나.조선조 같으면 ‘이것은 안 됩니다’해서 돌려 보내는데 우리는 대통령 참모면 무조건 노비 노릇하는 걸 당연시 한다.복역을 안하면 승지들이 선비사회에서 따돌림을 당했다.비루한 놈이라고.”

-지난 5월 펴낸 ‘조선이 버린 천재들’을 읽으면서 남명(南冥) 조식(曺植) 선생이 명종 10년(1555년) 왕에게 보낸 ‘단성현감 사직상소’를 읽고 기자로서 부끄러웠다.벼슬을 구걸하지 않고 한 시대를 넘어 역사와 대화하는 시대의 어른과 선비는 왜 없는 것인가.

“남인들을 보면 청남(淸南)과 탁남(濁南)이 있는데 그 기준을 알고 놀랐다.효종이 세상을 떠났을 때 상복을 1년 입어야 하느냐 3년 입어야 하느냐를 놓고 논쟁하다 1년이 채택됐다.남인 중에 ‘왕조국가에서 임금이 죽었는데 1년복을 입는 사람이 있다는게 말이 되느냐’고 해서 이 정권에는 참여하지 않겠다고 한 사람들이 청남이다.당시 새 임금이 된 현종의 나이가 16살이다.청남들은 평균 30살 이상이다.현종이 더 오래살지 않겠나.그럼 자기는 죽을 때까지 세상 안나가겠다.그 원칙을 가지고 벼슬하지 않겠다는 각오를 다진 것이다. 공자(孔子)시절부터 선비의 출사관이 있다.때가 되면 나가서 도(道·정치)를 펼치고 아니면 돌아와 학문을 닦는다.지금은 때가 되던 안되던,물러서야 할 때인데도 안 물러서고 끝까지 저러다가 온갖 망신을 다 당한다.의병전쟁 때 할 말 꽤나 하는 선비들이 자결 등으로 무수히 세상을 떠났고 일제를 거치고 해방이후 친일청산을 못하면서 나라 팔아먹은 사람들이 계속 집권해 왔던 과정에서 선비정신이라는 것 자체가 거의 찾아볼 수 없게된 것이 원인이다.”

-성균중국연구소가 ‘중국 지도자의 수첩’이라는 책을 냈다.시진핑(習近平) 주석과 리커창(李克强) 총리의 발언록에 자주 등장하는 표현이나 문장을 수록하고 해석해 놓은 책이다.책에는 고전에서 인용한 정치철학,도덕정치,민본정치에 대한 글이 유독 많다.하지만 우리에게는 그런 기억이 없다.정치의 천박함과 철학 부재를 반영하는가.

“중국은 국민당이든 공산당이든 원칙이 있다.문화대혁명 등 혼란을 겪었지만 덩샤오핑(鄧小平)이 만들어 놓은 최고 권력자 선출 시스템이 지금 주석이 차차기 주석을 선출하게 돼 있는 구조다.예측 가능하다.또 하나는 중국은 누가 정권을 잡든지 공산당은 일당이지만 당내에 항상 두세력이 있어 다당제 역할을 한다.그러면서 그들은 고전을 가지고 통치를 한다.마오쩌둥(毛澤東)의 주치의가 쓴 글을 보면 마오가 기차를 타고 다닐 때 가까운 곳에 칼 막스나 레닌 책은 없고 항상 중국 고전만 있다는 것 아니겠나.중국은 지금 소강사회(小康社會)라는 말이 많다.공자가 말한 유교의 이상사회가 대동사회(大同社會)다.대동사회를 이상적인 낙원이라고 한다면 소강사회는 대동만큼은 아니라도 백성들이 살만한 사회라는 것인데 중국이 이제 소강은 이뤘다고 해서 여기저기 붙여놓은 것이다.소강은 율곡(栗谷) 이이(李珥) 등 우리도 다 했던 이야기다.중국은 자기네 공산주의가 외래에서 온 것이 아니라 주체적으로 수용했다는 것이다.우리는 없다.정권 교체돼야 한다는 것만 있다.촛불정국에서 박 대통령 지지율이 4%까지 떨어졌으면 민주당은 60~70% 가야 하는데 30%대에 머물러 있다.이 걸 보면 ‘너희들이 (정권을) 잡았을 때는 잘했냐’’라는 의구심이 있는 것이다.질문을 또 해야 한다.‘너희들 정권 잡아서 어떻게 할것인데’.우리 역사에서 뭔가를 찾아서 해답을 제시해야 한다.”

-조기 대선이 불가피해 보인다.다음 지도자는 어떤 사람이 되야 하는가.그리고 시민사회는 무엇을 준비해야 하나.

“그동안 정조(正祖)의 통합 리더십을 많이 이야기 했다.이명박과 박근혜 정부를 겪어보니까 통합 전에 청소를 해야 한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태종(太宗)의 리더십이 더 필요하지 않느냐는 생각이다.태종이 당시 공신과 인척 집단을 다 청소하고 난 뒤 세종(世宗)에게 물려 주었기에 정책을 안정적으로 펼쳤다.김대중 정부도 통합에 치중하다보니 결국 지금까지 왔다.해방과 동시에 해결했어야 할 친일청산을 못한 뿌리가 깊다.차기 지도자는 최소한 어느 정도는 적폐를 청소할 필요가 있다.국민들도 이제는 메시아를 기대하기는 어렵다고 본다.한 나라의 정치는 그 나라 유권자의 수준을 넘지 못한다.지역감정 등을 벗어나 우리 사회의 비전을 제시하고 실천할 수 있는 인물을 뽑아야 한다.”

-‘사기(史記)’의 저자인 사마천(司馬遷)의 천(遷)과 ‘한서(漢書)’를 집필한 반고(班固)의 고(固)를 합해 호(號)를 ‘천고(遷固)’라고 쓰고 있는데 역사가의 붓을 쥐고 있는 스스로에 대한 다짐으로 이해한다.

“노사(蘆沙) 기정진(奇正鎭) 선생의 학맥을 이어 한학을 하신 이준영 선생 밑에서 공부했다.그 분에게서 선비의 자세와 학문하는 자세 등의 대강을 배웠다.이 분이 ‘천고’라고 지어주셨다. 제가 ‘이런 큰 호는 받는게 아닙니다’라고 했더니 ‘그런 학자들을 지향할 수는 있지 않느냐’고 하셨다.또 사마천의 천자는 옮길 천(遷)자고 반고의 고자는 굳을 고(固)자라 ‘원칙을 지키되 융통성을 발휘하라’는 뜻도 된다.동양학문에서 최고봉으로 삼는게 불평지명(不平之鳴)이다.‘불평의 울음소리’다.당나라 한유(韓愈)가 강조했다.사기와 한서를 놓고 볼 때 한유 이전에는 한서를 높이 평가했다.사기는 사마천이 궁형(宮刑)을 당한 것에 대한 불평을 쓴 것이 아니냐고 해서 그랬다.그러나 한유가 사마천의 불평(不平)은 개인의 불평이 아닌 세상이 평(平)하지 못한 것에 대한 울음소리다라는 ‘불평지명’ 이론을 세우면서 학문의 최고봉이 ‘불평지명’이 됐다.제가 감히 사용할 것은 아니지만 개인적으로 그런 생각이 들때가 있다.”

-최근 저술하는게 있나.

“사기나 한서 등을 번역하려고 했다.우리는 사기만 하더라도 본문만 번역하고 정작 중요한 주석 번역은 안한다.주석까지 번역되면 고대사는 그 걸로 끝나는 것이다.최근 조선이 전근대사회가 아니라고 했더니 그 얘기 좀 하자고 하는 데가 있어서 이야기하려고 한다.또 왜 ‘헬조선’이 되었는지 뿌리를 찾아보는 구상도 하고 있다.” 정리/진민수

 

이덕일은?

△1961년 충남 아산태생 △숭실대 대학원 사학 박사 △2009년 조만식숭실언론인상 수상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장 △저서 ‘당쟁으로 보는 조선역사’ ‘송시열과 그들의 나라’‘정약용과 그의 형제들’ ‘정도전과 그의 시대’ ‘칼날위의 역사’ ‘조선이 버린 천재들’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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