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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대(事大)의 추억

남궁창성 2017년 01월 06일 금요일
   
▲ 남궁창성

서울본부 취재국장

어린 조카 단종을 쳐 죽이고 왕위를 찬탈한 수양은 사대(事大)를 정치에 잘 활용한 인물이다.형 문종이 단명하고 단종이 즉위하자 왕위를 호시탐탐 노리던 수양은 단종 즉위년(1452년) 8월 명나라 이부낭중 진둔(陳鈍)이 사신으로 왔을때 국빈 만찬인 하마연(下馬宴)을 주관했다.수양은 사신의 자리를 임금의 자리인 북쪽에 마련하고 자신의 자리는 동쪽에 배치하며 아양을 떨었다.같은해 10월 명의 사신으로 중국에 간 수양의 사대는 다시한번 작렬했다.명나라 일개 낭중(郎中)인 웅장(熊壯)이 전하는 물품을 받으며 “황제께서 내리시는 것이니 의리로 보아 앉아서 받을 수 없다”며 벌떡 일어나 공손하게 받들었다.명의 관리들은 “조선은 본디 예의의 나라지만 예의를 아는 것이 이와같다”며 치하했다.수양은 자신이 명나라를 극진히 섬기는 사대주의자라는 점을 명에 각인시켜 왕위 찬탈후 자리를 보장받기 위한 의도였다는게 역사의 해석이다.

사대의 나라 조선에서 수양과 동시대를 살았던 무신 이징옥(李澄玉)은 달랐다.세종 14년(1432년) 병조참판이던 그는 조선출신의 명나라 환관인 윤봉(尹鳳)을 사신으로 맞았다.윤봉은 조선인이지만 중국인 보다 갑질이 상상을 초월했다.윤봉은 조선 관리들에게 사냥개를 내놓으라고 윽박질렀다.그는 수하를 시켜 백성의 개를 빼앗기도 했다.이징옥은 “나라에서 뇌물을 주지 말라는 칙서가 있었다”며 백성들에게 개를 되돌려 줬다.하지만 윤봉의 아랫것들은 모피를 요구하다 구하지 못하자 조선의 통역관을 매질하는 등 패악을 부렸다.윤봉은 이 과정에서 조선 백성을 죽게하는 등 횡포가 말이 아니었다.윤봉과 맞섰던 이징옥은 결국 사신들이 사족을 못쓰던 해청(海靑·매)을 풀어 주었다가 세종 14년 11월 의금부의 국문을 받고 귀양길에 올랐다.뇌물을 주지 않는다고 소동을 부려 농사꾼인 동생을 당상관에 임명토록 했던 윤봉의 전력을 익히 알았던 이징옥의 사대는 수양의 사대와는 달라도 너무 날랐다.

사대에 있어 다른 길을 걸었던 이징옥과 수양은 1453년 쿠데타 세력이 어린 단종의 왕위를 찬탈한 계유정난(癸酉靖難) 과정에서 정면 충돌했다.수양은 정적인 김종서와 황보인 등을 주살하고 당시 함길도 도절제사인 이징옥을 의금부로 하여금 체포해 평해(平海)에 안치하라고 명했다.하지만 현직 도절제사를 체포할 경우 저항을 우려해 김종서와 앙숙인 평안우도 도절제사 박호문(朴好問)을 이징옥의 후임으로 삼아 자리를 빼앗은 뒤 체포하게 했다.효(孝)의 나라에서 아흔 여섯 살의 부친을 봉양하게 해달라며 수차례 올렸던 사직상소도 변방의 안위를 이유로 허락하지 않던 조정의 갑작스런 인사에 이징옥은 변고를 눈치챘다.그는 수양의 수하 박호문을 죽이고 그의 아들 박평손(朴平孫) 세력을 장악한뒤 군사를 일으켜 수양을 토벌하고자 했다.그러나 같은해 종성 판관 정종(鄭種)과 이행검(李行儉)에게 살해되면서 그의 꿈은 미완에 그치고 말았다.

고고도 미사일(사드) 한반도 배치를 놓고 중국 정부의 뒤끝이 명과 청의 갑질만큼 극렬한 가운데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들의 방중외교가 새삼 관심을 모으고 있다.장관 출신에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을 역임한 김장수 주중 대사에 대한 홀대가 공공연한 비밀인 가운데 중국 정부의 민주당 국회의원들에 대한 국빈급 환대가 전략적이다.사드를 추진중인 현 정부와 이를 반대하는 야당 사이의 자중지란(自中之亂)을 이용하고,미래 권력에 바짝 다가선 민주당을 활용해 수명이 다한 현 정부의 고삐를 조이려는 이이제이(以夷制夷)가 중국스럽다.오늘을 예측하지 못하고 내일을 도모하지 못하는 탄핵정국에 대한민국은 어디로 흘러가고 있는가.어제는 이합하고 모레는 집산하는 대선정국에 고단한 국민들은 안녕한가.정유년 아침 나라의 운명과 국민의 삶을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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