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의 시계는 촌각의 어김도 없이 잘도 돌아간다.정유년 닭의 해가 밝은 지도 열흘이 다 돼 간다.하늘이 놀라고 땅이 흔들릴만한 일이 잦은 요즘이다.그러나 이런 일들이 물처럼 흘러가는 시간을 멈추지 못한다.새해를 맞아 다들 앞날에 대해 태산 같은 걱정을 한다.하지만 대체로 다가 올 앞날을 어쩌지 못한다.먹고 마시고 지지고 볶고 하는 것이 세상의 일이다.기실 그 평범함이 세상의 큰 배경이 돼 준다.

얼핏 요란한 일들이 세상을 쥐락펴락하는 것으로 보인다.그러나 세상을 지탱하는 힘은 언제나 의식적인 것의 바깥에 놓여있다.세상의 일이란 좌충우돌하게 마련인데 술이 매개되는 경우가 많다.상식이나 유무형의 사회적 약속을 깨는데 술이 연루돼 있곤 한다.술자리가 전에 비해 크게 줄었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연말연시 음주의 기회가 늘어난다.이 때문에 술이 빚어낸 사건사고가 여기저기서 터진다.

지난 연말 한 중소기업의 30대 아들이 비행기 안에서 만취해 승무원을 폭행을 하는 일이 벌어졌다.잊을 만하면 터지는 게 이런 추태다.문자 그대로 술이 이런 괴물을 만들어 낸 것이다.경각심을 가질 만도 한데 같은 일이 반복된다.지난 5일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의 세째 아들이 술에 취해 한바탕 소란을 피웠다.종업원을 폭행한 것도 모자라 연행되는 과정에서도 순찰차를 걷어차며 난동을 부렸다고 한다.

지난 3일 화천에서는 50대 주민이 퇴근하는 군수의 멱살을 잡고 공무원들에게 폭력을 휘둘렀다.그것도 군청의 주차장에서 이런 행패를 부린 주민은 취한 상태였다고 전한다.술이 부른 이런 불상사가 줄을 잇는 건 결코 좋은 조짐이 아니다.올해 정유년(丁酉年)이 술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점이 눈에 띈다.정유년의 유(酉)는 12지지(地支) 가운데 열 번째인 동시에 술, 혹은 술을 담는 그릇의 뜻도 있다.

지난해 김영란 법이 시행되면서 접대문화가 바뀌고 흥청망청하던 분위기도 달라졌다.그러나 오랜 인류의 역사와 문화로서 녹아있는 것이 술이다.술이 문제가 아니라 마시는 사람이 문제다.중국의 작가 예성타오(葉聖陶)는 “술을 마시는 것의 멋은 잔을 비우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 한 모금 한 모금 음미하는데 있다”고 말했다.절제 있게 마시는 술은 개인의 삶과 세상을 보다 밝게 하는 윤활유가 될 것이다. 김상수 논설실장 ssookim@kad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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