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일 강릉원주대 명예교수

▲ 김성일 강릉원주대 명예교수

자녀 중 맏이는 처음에는 독자와 다름없어 부모의 사랑과 관심을 독점하지만 동생이 태어나면 곧 왕좌를 내주고 동생을 돌보며 배려하는 태도를 배우게 된다.특히 부모가 자리를 비운 동안에는 자연스럽게 그 역할을 대행하게 된다.과거와 같이 형제가 많을 때는 특히 장남의 책임이 막중하였으며,장남이 역할을 제대로 못하면 장녀의 책임도 장남에 못지않았다.그러나 장녀는 결혼 후에 친정 일에 깊이 개입하게 되면 부부 갈등을 초래하는 수가 많다.정작 자신의 가정에는 소홀히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맏이는 대부분 동생들을 장기간 돌보고 관심을 두기 때문에 동생들은 습관이 되어 나중에 여유가 있어도 맏이를 도우려고 하기 보다는 의지하려고만 한다.따라서 맏이가 지도력이 부족하거나 특히 경제적으로 여유가 없는 경우에는 동생들을 잘 돌보지 못해서 형제간에 분란이 발생할 가능성이 크다.게다가 맏며느리가 자기 역할에 충실하지 않으면 불화가 가중되기도 한다.동생들은 맏이처럼 집안 문제에도 적극 관심을 보이지 않고 방관하다가 우연히 무슨 잘못을 발견하면 맏이에게 비판을 한다.직접 맡아하기보다 비판하기는 훨씬 쉽다.맏이는 동생들에 대한 책임 때문에 과감히 모험을 시도하거나 자유롭게 행동하지 못해 보수적이 되고 세심하며,동생들은 이런 맏이를 소심하고 완고하다고 싫어하는 경우도 많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집안일을 전부 맏이가 책임지기 때문에 제사나 차례 때는 맏며느리가 더 바쁘고 동생들은 손님처럼 시간에 맞춰 왔다 갈 뿐이다.벌초도 동생들은 그다지 관심이 없어 개인적으로 바쁘면 빠지기도 하지만 맏이는 의무적으로 하게 된다.무슨 일로 형제들이 모여야 할 경우에도 주로 맏이가 주도하여 장소도 마련해야 한다. 부모는 맏이에게 성장 과정에서 기대를 많이 하면서 지원과 특혜도 부여하지만 나중에 맏이가 맡게 될 책임과 희생은 그보다 훨씬 큰 것 같다.동생들은 대체로 집안의 모든 일을 맏이의 책임이라고 믿지만,그 부담과 고뇌를 실감하지는 못한다.

자녀수가 적고 맏이에 대한 특혜가 감소되어 자녀의 권리가 법적으로 동등하게 보장된 지금도 모든 부모는 맏이에게 어린 동생을 돌봐야 한다는 압력을 노골적으로 또는 은연중에 가하고 있다.풍습의 변화로 요즘은 제사나 성묘도 생략하고 벌초도 대행하는 경우가 증가하여 맏이의 책임이 과거에 비해 많이 감소되고 있으나 동생들에 대한 배려와 책임의식은 자연스러운 행동이므로 앞으로도 변하지 않을 것이다.그것은 성장 과정에서 경험의 결과로 비록 부담스러울 때가 많더라도 맏이의 숙명이라고 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맏이 스스로 그렇게 여기는 면도 많다.그리고 동생들은 맏이의 체험을 할 수 없기 때문에 그 노고를 충분히 이해하거나 고마움을 표하는데 미흡할 수 있다는 것도 인정해야 한다.시대가 변해도 맏이가 동생을 헤아리며 가족의 조화와 화목을 위하는 마음은 자연스러운 것이므로 달라질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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