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 시장의 성장 속도가 매섭다.매년 2배 넘게 커졌고 2020년에는 183억 달러로 예측된다.성과 또한 마찬가지다. 나아가 현재 인간 또한 누군가에 의해 만들어진 로봇이라는 생각도 할 수 있다.이러한 문제들은 자신이 주체적인 생명체임을 증명하지 못하기 때문에 발생한다.그래서 철학이 탄생하였다. 존재에 대한 논의는 데카르트의 ‘나는 생각한다’를 시작으로 주체를 실체화하지 말라는 니체를 지나,현대에는 후설이 의식과 대상을 나누지 말라는 판단중지가 있다.하지만 후설 역시 미완성이다.

그래서 철학은 언어까지 범위를 넓혔다.이전의 이론들은 언어라는 범주로 제한되어 있다는 것을 지적한다.언어로의 증명은 언어 바깥에서까지 보장되지 못하므로 어차피 무용지물이라는 것이다.그런데 과연 우리가 언어 밖으로 나갈 수 있을지 의문이다.

과학과도 손을 잡았다.1초를 무한으로 나누면 무한개의 장면이 나온다.정지된 상태의 한 장면에서 다음 장면으로 이어지게 하는 마법의 힘은 과연 무엇일까? 증명해 낼 수 있을까? 우리는 애초에 불가능인 걸 시도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필자는 증명이 불가능은 아닐 수 있지만,우리로써는 절대 증명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증명(연역법)은 완벽의 상태에서만 가능하기 때문이다.무지의 부분이 하나라도 있으면 전체가 알 수 없게 된다.접시에 설탕이 있는데 이전까지의 설탕은 달았으므로 접시의 설탕 역시 단맛일까? 인간은 빅뱅 이전에 대해 모른다.A가 빅뱅을 만들었고 모든 것이 A의 마음대로일 수도 있다.따라서 설탕이 달달한 것은 귀납법이고,접시의 설탕은 매운맛이 될 수도 있다.즉,완벽이 아니면 모든 것이 불확실하게 된다.

완벽은 이성과 미래(시간,변수) 또한 없는 결정된 상태이다.따라서 증명의 순간에 우리는 존재할 수 없게 된다.로봇과 다름없게 된다.그러므로 존재하는 우리는 필연적으로 아무 것도 알 수 없고,추측만 할 수 있는 운명이다.판단중지에는 인간의 미완성이 내포되어 있고,언어 안과 밖(완벽) 전체를 동시에 알 수 없다.

최성한·대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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