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들이 비웃을지 몰라도 붕어빵 굽는 지금이 행복”
장애인 아내와 자식 3명 빠듯한 살림에 아쉬운 한푼
“다섯식구 먹고살기 팍팍 책 못 사줄때 가슴 찢어져”

▲ 어려운 가정 형편에도 서로를 의지하며 붕어빵 장사를 하고 있는 이주하씨와 남편 김종일씨가 찾아온 손님들에게 미소지으며 붕어빵을 건내고 있다. 안병용

“그래도 부끄럽지 않은 부모
붕어빵 팔때만큼은 행복해”

 

“가방줄(학력) 짧은 저도,몸 불편한 아내도 월급 받으며 직장생활하고 싶지만 반기는 곳은 없고 아이들은 커가고 해서 길거리로 나왔죠.”

맹추위가 찾아온 10일 춘천 퇴계동의 한 붕어빵 노점.청각장애를 앓고 있는 이주하(35·2급)씨와 남편 김종일(49)씨가 언손을 녹여가며 붕어빵을 굽고 있다.살을 에는 듯한 한파와 몰아치는 칼바람으로 온몸이 꽁꽁이 얼어붙지만 김씨 부부는 추위를 잊은지 오래다.빠듯한 살림에 아쉬운 한 푼이라도 더 벌려는 김씨 부부에게 있어 제 몸 돌보는 것은 사치에 가깝다.김씨는 “노점이라는게 밥먹으러 간 사이 손님이 올 수 있어 한시도 자리를 못 비운다”며 “붕어빵과 함께 파는 오뎅으로 점심도 떼운다”고 말했다.

김씨 부부가 아침부터 밤 늦게까지 12시간 가까이 추위 속에 붕어빵을 팔아도 손에 쥐는 건 5만원 남짓.한달 동안 하루도 쉬지 않고 문을 열어도 150만원을 넘기 힘들다. 지적장애 3급인 둘째 아이 근호(11·가명)와 아내에게 나오는 장애연금,기초생활수급비 등 정부 지원금 110여만원을 합쳐도 월 수입이 260만원에 그친다.월세 내고 교통비,통신비 등 이것저것 빼면 다섯 식구 하루하루 끼니를 걱정할 처지다.이들은 “3년 전부터 받고 있는 기초수급비가 생활하는데 도움이 많이 되지만 5인 가족이 살아가기엔 적은 편이다”고 말했다.더욱이 올해 첫째 효원(14·가명)가 중학교에 올라가고,셋째 진현(8·가명)이는 초등학교에 진학,교육비 부담이 더해진다.입학 전 2~3곳씩 학원을 다닌다는 말은 그야말로 ‘딴나라 얘기’다.근호,진현이는 물론 효원도 초교 6년 동안 학원 문턱을 밟아본 적이 없다.“그 흔한 학원은 물론 책 같은 것도 맘껏 못 사줄때 가슴이 가장 찢어진다”며 “우리야 힘들게 살았어도 아이들은 그렇지 않아야 하는데…”라고 속에 있는 말을 할때는 물기가 묻어났다.

김씨 부부가 가난의 굴레에서 벗어나기 위해 발버둥을 치지만 그럴수록 오히려 보다 깊은 빈곤의 늪 속으로 빠져만 간다.이씨는 날이 갈수록 죄어오는 생활고를 이겨보고자 취업전선에 나서도 봤지만 돌아오는 건 좌절과 시련 뿐이었다.인형 눈알 붙이기,박스 스티로폼 넣기,볼펜 심 꽂기 등 남들이 부업으로 여기는 일에 몇차례 도전했지만 비장애인에 비해 생산성이 떨어지다보니 환영받지 못했다.방안에 앉아 있을 수만은 없어 길거리로 나왔지만 비록 몸은 힘들어도 후회는 하지 않는다고 한다.

김씨 부부는 “남들은 비웃을지 몰라도 지금이 행복하다”고 말했다.김씨는 “붕어빵 팔때만큼은 아이들 아빠,엄마로 열심히 사는 것 같아 마음은 편하다”며 “아이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부모가 되는 것이라면 길거리 인생인들 뭐 어떻냐”고 웃어보였다. 취업난이라는 현실의 벽이 막힌 장애인은 이씨만이 아니다.전국 15세 이상 장애인 인구의 고용률(지난해 5월 기준)은 36.1%로 비장애인을 더한 전체 인구의 고용률(61%)의 절반 수준에 그친다.강원권도 34.8%에 머물고 있다.15세 이상 장애인 9만6815명 가운데 취업자는 3만2719명이고,나머지 6만4096명은 자의든 타의든 일손을 놓고 있는 것이다.취업자 수에는 일용근로자,임시근로자,무급가족봉사자도 포함,안정적으로 임금을 받으며 일하는 장애인 수는 더 낮다.전국 기업체의 장애인 고용률(2014년 12월 기준)은 5% 미만이고,상시근로자 1214만9124명 가운데 장애인은 17만2470명으로 1.4%에 그친다.

이씨는 “직장을 구해보려 했지만 상처만 받기 일쑤다”며 “예전보다 많이 나아졌다고 하지만 사회적 편견과 냉대는 여전하다”고 말했다.

아내 이씨는 아이들 뒷바라지도 만만치 않아 일자리 구하기는 단념했다.아이들 학교 보내려면 수입이 늘어야하는데 오히려 날씨가 풀리는 봄이되면 붕어빵 장사마저 접어야해 생계가 막막하다.유원지를 돌며 옥수수를 파는 여름철까지 3개월 가량은 수입이 없다.하루살이에 치여 모아놓은 재산이라고는 방 두칸 짜리 월세 보증금 500만원과 10년이 훌쩍 넘은 고물차가 전부다.김씨는 “봄이되면 어떻게 먹고살지 암담하다”며 “공사장에 나가 막노동을 생각하고 있는데 작년에 아이 이빨 치료비로 100만원 넘게 나간 것 처럼 갑자기 목돈 쓸 일이 생기지 않을까 겁난다”고 말했다.

 

장애인 가족의 가장인 김씨도 많든 적든 일정한 소득이 보장되는 월급쟁이를 희망하지만 낮은 학력으로 취업문을 열기에는 한계가 있다.어려운 가정에서 태어나 초등학교 졸업 뒤 바로 생계를 책임지며 닥치는대로 일하다보니 학력은 짧고 익힌 기술도 변변치 않다.오랜기간 운전직에 종사했지만 몇해 전부터 허리 디스크 증상이 있어 이마저도 어렵게 됐다.김씨는 “허리 아픈거야 참아야겠지만 나이도 있어 뽑으려 하지 않는다”며 “내 몸이야 어떻게 되든 공사장이라도 나가야지 아이들이 있는데 가만 있을 순 없지 않냐”고 말했다. 김정호 kimpro@kad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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