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독일 제10대 대통령에 취임한 크리스티안 불프는 2년만에 대통령직에서 물러났다.그의 퇴진은 2008년 주지사 시절 집을 사기 위해 친구에게 은행보다 1%포인트 낮은 이자로 50만유로(한화 6억3000만원)를 빌린 의혹이 제기된 것에서 비롯됐다.이후 가족여행 때 호텔비 720유로(한화 90만원)를 친구가 대신 냈다는 것까지 논란이 됐다.

또 그의 아내가 자동차를 사면서 할부이자를 0.5%포인트 할인받고,판매원으로부터 5만원짜리 아이 장난감을 선물로 받은 것까지 문제가 됐다.이에 불프 대통령은 직무와 상관없이 친구에게 돈을 빌린 것이라고 호소했지만,비난여론은 가라앉지 않았다.독일 검찰도 연방의회에 대통령의 면책특권을 없애달라고 요청하기에 이르렀다.결국 사면초가에 몰린 그는 “저는 독일 국민들의 신뢰를 잃어버렸습니다.따라서 저의 직은 심각한 손상을 입었습니다.더 이상 국내외에서 대통령직을 수행할 수 없습니다”며 대통령직에서 물러났다.

사임후 수사를 진행한 검찰은 제기된 다른 의혹에 대해서는 별다른 혐의가 없다며,친구가 대신 내준 90만원의 호텔비에 대해서만 향응수수 및 직권남용 혐의로 기소했다.그런데 이마저도 2년 후 법원에 의해 무죄판결을 받았다.당사자로서는 억울하기 그지 없는 일이었다.내각제를 채택하고 있어 상징적 존재인 대통령에게도 독일 국민들은 엄격한 도덕성을 요구했고,불프 대통령은 이에 따랐던 것이다.

독일의 불프 대통령을 떠올린 것은 대한민국에는 책임지는 정치가 있었던가 하는 의문 때문이다.정유년 새해를 맞았건만 국정농단 의혹의 당사자들은 모르쇠와 변명으로 일관하고 있고,이 때문에 대다수 국민들은 강추위에도 주말마다 촛불을 들어야 하는 고통을 감내하고 있다.또한 누구나 자유로운 의사표현을 할 수는 있다지만,탄핵에 반대하는 시위대를 지켜봐야하는 것도 곤혹스럽다.

독일 불프 대통령은 개인적으로는 억울하지만,국민의 대통령에 대한 신뢰가 무너져 그 직이 손상됐다는 책임을 지고 대통령직에서 물러났다.그런데 우리에겐 ‘책임지는 정치’란 없다.

천남수 사회조사연구소장 chonns@kad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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