빚은 치명적인 달콤함을 지녔다.강렬하다.오죽하면 ‘가을 빚에 소잡아먹는다’고 했을까.이 속성을 활용한 것이 에스키모인들의 여우 사냥법이다.그들은 날카롭게 벼린 칼에 동물피를 묻혀 여우를 사냥한다.칼에 묻힌 피를 핥다 혀를 베인 여우가 결국은 자신의 피를 빨다 죽게 하는 것이다.칼에 묻은 ‘피’가 원금이라면 여우의 목숨은 ‘이자’인 셈이다.‘병 없고 빚 없으면 산다’거나 ‘빚이 많으면 뼈도 녹는다’,‘빚 준 상전’이라는 말이 빚의 속성을 정확히 꿰뚫는다.

악마의 덫인 빚이 대한민국을 덮친다.중앙·지방정부는 물론 공공기관과 기업,가계 모두 천문학적인 빚에 허덕인다.거리를 활보하는 모두가 채무자다.가계부채 1300조원,중앙·지방정부 등 공공부문 부채 1003조 5000억 원.대한민국이 에스키모인들이 꽂은 ‘피묻은 칼’을 입에 물고 아무렇지 않게 살아간다.참 신기하다.IMF 사태를 통해 ‘약탈적 금융’의 민낯을 가감 없이 경험한 우리사회는 아직도 그들이 놓은 덫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맑은 날 우산을 빌려주고 비오는 날 거둬가는’ 그들의 행태에 속수무책이다.

강원도의 처지는?최순실일파의 놀이터가 된 평창올림픽은 빚더미에 올라선지 오래다.지금까지 평창올림픽 준비를 위해 쓰인 돈은 도로와 철도,경기장건설 등의 비용(11조4400억)과 조직위 운영 예산(2조2000억 원) 등 총 14조여 원.강원도는 올림픽 유치를 위해 2004년부터 2010년까지 1조4745억 원을 선투자 한데 이어 이후에도 1조5345억 원을 더 썼다.빚의 규모는 2017년 현재 지방채 3603억원과 지역개발채권 6635억원 등 1조238억원.재정자립도 18%인 강원도가 짊어지기엔 벅차다. 문제는 올림픽 이후.

브라질 리우올림픽 조직위원회와 아시안 게임을 치른 인천시,F1 국제자동차경주대회를 추진한 전라남도는 모두 부채에 발목이 잡혔다.이런 상황을 예감한 듯 강릉시가 올해 받은 보통교부세 405억원을 ‘올림픽 빚’을 상환하는데 사용하기로 했다.돈 쓸 일이 한두 곳이 아닐 텐데 ‘올림픽 채무 제로화’를 선언한 것이다.‘부자들의 냅킨 재테크’ 저자이자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인 칼 리처즈는 “빚을 갚는 것은 이익이 확정된 투자”라고 했다.강릉시가 이 말을 끝까지 믿고 따를지 궁금하다.그럴 수 있기를….

강병로 논설위원 brkang@kad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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