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불 꺼지는 강원도내 ‘성매매 집결지’
원주 ‘희매촌’ 춘천 ‘난초촌’ 등
6·25 전쟁 이후 도내 속속 등장
미군부대·탄광 등 흥망성쇠 직결
현재 원주·속초·태백 아직 남아
종사자 “지자체 지원액수 부족…
집결지 사라지면 다른 곳 이동”
단순 철거 땐 ‘성매매 이주’ 불과
종사자 자립 돕는 지원체계 시급

그래픽/홍석범
그래픽/홍석범

원주 학성동.밤이 되면 오늘도 골목 사이로 붉은 불빛이 새어나온다.작은 가게의 유리창 사이로 하나 둘 가느다란 손이 나와 지나가는 남성들에게 잠시 놀고 가라는 목소리로 골목을 채웠다.15분에 8만원.이들의 가격표다.원주시가 학성동 일원 도시재생사업을 추진하면서 이 같은 모습도 조만간 사라진다.급격한 산업화의 이면이었던 집창촌도 어느새 옛 이야기가 돼 간다.강원도민일보는 강원도내 집창촌을 되짚는다.이 역시 강원도의 한 역사이기 때문이다.

■ 성매매 여성 이야기

A(가명·30대)씨는 돈이 필요했다.쌓여만 가는 빚과 가족들에게 보내줘야 하는 돈은 한달에 400만~500만원.평범한 일로는 해결할 수 없었다.결국 발길이 닿은 곳이 희매촌.이 곳에서 일하는 다른 여성들의 상황도 비슷하다.처음에는 소액이 필요해 다방에서 일하다 점점 더 많은 돈을 벌어야겠다는 생각이 들면 성매매까지 손을 뻗게 된다.희매촌 역시 옛 춘천 난초촌에서 넘어온 여성들을 포함해 전국 각지에서 성매매 여성들이 모여들었다.A씨 역시 유사 업종에서 일하다 중간 브로커를 만나 소개를 받고 이 곳에 오게 된 경우다.이 생활도 벌써 10년이 넘었다.

예상은 했지만 녹록지 않은 시간이었다.지자체나 여성단체에서 상담을 올 때 상담을 받고 싶어도 포주가 거부하면 대화조차 못할 때가 부지기수다.막상 상담을 하더라도 ‘일을 하지 말라’는 원론적인 얘기 뿐이니 별로 와 닿지 않을 때가 많다.다이어트약과 수면제를 먹다 부작용으로 급사하는 여성을 봤을 때의 충격,밖에서 망을 봐주는 ‘삼촌’이 없을 때 손님이 무슨 짓을 저지를 지 모른다는 불안감은 A씨를 짓누른다.

하지만 이 생활을 벗어날 수 없다.이직을 생각해 본 적도 오래다.당장 빚도 갚아야 하고 매월 나가던 돈을 충당할 수 있는 곳이 마땅치 않기 때문이다.A씨는 “한 달에 1000만원 이상 벌 수 있는 직업이 없다”며 “이 일이 창피하기도 하고 가족들의 마음이 아플까봐 아직까지 비밀로 하고 있지만 돈을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고 했다.약속했던 15분이 지나자 기다렸다는 듯이 ‘포주’가 방으로 들어왔다.A씨는 또 다시 화려한 조명이 비추는 가게 입구로 향했다.

▲ 원주 성매매집결지 일명 ‘희매촌’은 아직까지도 수십개의 업소가 남아 불을 켜 놓은채 운영을 하고 있다.
▲ 원주 성매매집결지 일명 ‘희매촌’은 아직까지도 수십개의 업소가 남아 불을 켜 놓은채 운영을 하고 있다.

■ 원주시 성매매 집결지 정리 성매매 근절로 이어질까

희매촌은 6·25전쟁 이후 당시 지역에서 번화했던 학성동에 조성됐다.옛 원주역 인근에 위치,지난 60여 년 간 성업했다.2004년 성매매특별법이 시행됐지만 여전히 20여 개 업소가 운영 중이다.

원주시는 2022년까지 희매촌이 위치한 학성동에 217억원 규모의 도시재생사업을 벌여 이 곳에 문화예술공간을 조성하고 생활인프라를 확충할 계획이다.이 같은 사업을 통해 원주시는 정비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성매매 집결지를 정리하겠다는 계획이지만 일부 업주와 여성들의 반대에 부딪혀 쉽지 않은 상황이다.원주시가 성매매 여성에게 지원하는 비용으로 생활지원금 월 100만원(최대 12개월),직업 지원비 월 30만원(최대 12개월),주거지원비 600만원(1회) 등을 책정했지만 현재까지 지원을 받은 종사자는 단 한 명도 없다.

성매매 여성들은 최대 연 2160만원에 달하는 지원금액이 너무 적다고 주장한다.성매매 여성 A씨는 “코로나 이전에는 한 달에 2000만~3000만원까지 버는 사람들도 있었다”며 “버는 비용이 순수익이 아니라 절반정도 가져간다 하더라도 월 100만원을 받는다면 차라리 아르바이트를 하는 것이 낫다”고 말했다.한 포주는 “개인이 운영하는 사업체를 시에서 없앤다는 것이 말이 되지 않으며 갑작스러운 결정에 대해 반대한다”며 “강제적으로 집행한다면 시위나 집회 등을 진행할 것”이라고 반발했다.

성매매 집결지 철거에 대한 양측의 합의가 이뤄지지 않는다면,이는 성매매 근절이 아닌 ‘성매매 이주 정책’에 불과하다는 지적도 나온다.춘천의 경우 2013년 9월부터 난초촌 운영이 중단됐지만 2014년 9월 춘천시 신북읍에 다시 성매매집결지가 생기면서 지역사회에 큰 논란이 되기도 했다.또다른 성매매 여성은 “대구는 인당 2000만원을 받았는데 가까운 마산으로 이동해 성매매 근절이 아니라 분산이 이뤄졌다”며 “원주 집결지가 사라지면 경기도나 정선 등 다른 지역으로 이동할 생각”이라고 했다.

원주시 관계자는 “성매매 여성 및 포주들이 크게 반발하지 않도록 지속적으로 대화하겠다”며 “물리적인 충돌 없이 해결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만큼 대화의 끈을 놓지 않겠다”고 했다.

■ 6·25 전쟁 이후 등장한 성매매 집결지

원주 희매촌 철거는 강원도 성매매 집결지의 퇴장이다.본지가 취재한 결과 2021년 강원도내 성매매 집결지는 원주 희매촌 40여 곳(실제운영 20여 곳·종사인원 50여 명),속초 금호실업 16곳(종사인원 10여 명),태백 대밭촌 1곳(종사인원 1명)이다.태백 대밭촌이 올해 10월 영업을 중단할 것으로 알려지면서 강원도내에는 사실상 원주와 속초만 남은 셈이다.

강원도내 성매매 집결지는 미군부대,탄광산업 등 강원도 흥망성쇠와 맞닿아 있다.6·25전쟁이 끝난 직후 춘천시 근화동과 원주시 학성동에는 각각 ‘난초촌’과 ‘희매촌’이라는 이름으로 성매매 집결지가 들어섰다.한때는 업계 종사자가 100~200여 명에 달할 정도로 호황이었다.춘천의 경우 근화동 난초촌을 비롯해 조양동 ‘개나리촌’,소양동 ‘장미촌’까지 집창촌이 잇따라 조성됐다.

태백 ‘대밭촌’도 석탄산업 부흥과 함께 성장했다.많은 근로자들이 태백과 정선에 모여들었고 벌목집,수원집,별집 등 16개 업소,가게 당 10여 명 이상의 종사자들이 성매매에 투입됐다.당시 일했던 여성들만 200여 명으로 추산됐다.당시 대밭촌 성매매 여성들은 하루 수백만원의 수익을 얻었지만 일부 업주들이 숙식을 제공한다는 이유로 수익의 절반을 가져가 오히려 여성들의 빚이 늘어나는 상황이 비일비재했다고 주민들은 회상하고 있다.태백 대밭촌 업소를 인수해 다른 업종으로 운영 중인 한 상인은 “처음 상가를 인수했을 때 방이 18개로 구성돼 있어 상당히 많은 수의 종사자가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고 했다.

하지만 1990년대 부터 성매매 집결지 철거 움직임이 일었고 춘천 개나리촌과 장미촌은 도시개발 사업과 맞물리면서 철거됐다.태백 대밭촌 역시 석탄산업이 인기를 잃자 인구 급감의 타격을 입고 점차 규모가 축소되기 시작했다.현재는 단 한 곳에서 종사자 한 명만 남아있는 상황이다.

■ 역사속으로 사라지는 성매매 집결지

2000년대 들어 지자체 주도의 성매매 집결지 철거는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대표적인 사례가 춘천 난초촌이다.1950년대부터 조성된 성매매 집결지였지만 역 인근에 위치하고 있어 도시 이미지를 저해한다는 민원이 끊이질 않았다.2004년 성매매특별법 시행 이후에는 철거 여부를 두고 업주들과 지자체 간 마찰도 지속됐다.춘천시는 전국 최초로 성매매 여성의 자활을 돕는 ‘피해여성 자활지원 운영 조례’ 등의 지원책을 마련해 지속적인 대화를 시도했다.결국 춘천시는 물리적인 충돌과 공권력 행사 없이 2013년 9월 1일 ‘난초촌’의 운영을 중단하는 성과를 거뒀다.현재는 옛 성매매업소 건물 매입을 마무리하고 해당 지역을 공영주차장과 녹지로 조성해 예전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다.

강릉시의 경우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을 앞두고 강릉역 정비와 함께 여관 등에서 성매매를 자행하던 ‘여인숙촌’을 정리하기에 나섰다.2016년 여인숙 14개 업소에 보상을 진행해 폐쇄했다.현재는 여관 등의 숙박업소는 남아있지만 외국인 노동자가 묵는 형태로만 운영 중이다.

반면 동해시 발한동의 아파트형 성매매업소 ‘부산가’의 경우 2009년 10월 경찰이 매일 밤마다 4명씩 조를 이뤄 탈법행위를 단속하고 강철 출입문 등을 설치해 윤락행위를 원천 봉쇄했다.공권력의 강력한 단속 앞에 2011년 자취를 감추게 됐다.

원주 희매촌이 철거되고 나면 도내에서 유일하게 남아있는 성매매집결지가 되는 속초 금호실업 역시 지자체 차원에서 도시계획사업으로 철거를 유도하고 있으나 아직까지는 이렇다 할 성과는 없는 상황이다.

이성림 여성문제연구회장은 “성매매 집결지를 없앤다고 해서 성매매가 근본적으로 사라질 수 있겠는가에 대한 딜레마가 있다”며 “오피방이나 마사지업소 등 다양한 형태로 성매매가 음지화 될 가능성을 염려하지 않을 수 없다”고 밝혔다.이어 “성매매에 대한 일시적인 단속이 아니라 인권차원의 문제로 인식,지속적으로 단속함과 동시에 성매매 여성들에 대한 관심과 배려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라태랑 춘천길잡이의집 소장은 “일부 성매매 여성들이 일을 그만두지 않고 다른 지역으로 이동하거나 유사업종으로 흘러가는 상황이 비일비재하다”며 “무엇보다 성매매 여성이 자립할 수 있는 지원체계를 마련하는 것이 가장 시급하다”고 밝혔다. 정우진

저작권자 © 강원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