쪽빛에 홀린 '쪽빛 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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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모시에 쪽물을 들여 널고 있다. 박원희
유상열(49)씨는 춘천 버들개(유포리) 아침못가에 천연염색연구소 '풀빛'을 차려놓고 올해 7년째 쪽빛에 미쳐 산다. 700평 남짓한 밭에 쪽을 심어 원료를 자급하고 마당 한 켠에 조립식 작업실을 지어 천연 염료를 연구하고 개발하고 염색하는 즐거움에 푹 빠져 사는 사람이다. 쪽물이 들어 시퍼런 그의 손을 잡으며 나는 젊은 염색장인의 낭만을 느꼈다.

화려하되 들뜨지 않아 축복이 되고

 전통의 맥을 잇는다는 사명감이나 우리 염료·염색문화의 질적 수준을 높인다는 의무감 따위 거창한 말을 그는 입밖에 내지 않았다. 그냥 좋아서 빠져들었고 할수록 즐거움이 늘어나서 매달리는 일입니다. 쪽물이 곱게 든 모시가 빨랫줄에서 바람에 하늘하늘 춤추는 걸 바라보면 배고픈 것도 잊어버리죠. 쪽을 가꾸고 쪽에서 우려낸 천연 염료로 염색을 하는 일이 주된 작업이지만 꼭두서니 잇꽃 신갈나무 오리나무 심지어 맨드라미에서 추출한 갖가지 염료로 다양한 색깔을 뽑아내는 기쁨을 그는 축복으로 여긴다. 그의 손을 거쳐 빨강 파랑 노랑 검정 계통의 눈부시게 아름다운 색채가 태어나지만 강렬하지 않고 은은하며 화려하되 들뜨지 않아 정감이 넘친다.
 쪽을 재배하고 거두는 일에서 항아리에 그 쪽을 담가 발효시키고 염료를 추출하는 과정은 한마디로 중노동이다. 쪽이란 식물이 원래 햇빛에 민감해서 해뜨기 전 새벽 이슬을 맞으며 거둬야 하고 항아리에 담그는 일도 밤에 해야 한다. 쪽을 발효시키는 과정에서 굴껍질을 태워 만든 석회를 넣어 쪽죽(泥藍)을 만들고 쪽죽에 명아주대 메밀대 콩대등을 태워 얻는 재를 넣어 쪽 염료를 끌어낸다. 품도 만만치 않지만 감으로 해야하는 작업이라 염료가 완성될때까지 노심초사, 긴장의 연속이다. 그래도 그는 그 일이 재미 있고 또 즐겁다.

학창시절부터 색깔은 마음속 '화두'

 버들개에서 자라 오동초교 춘성중 성수고를 다니는 동안 그는 학교 공부보다 책읽는 재미에 빠졌다. 중학교 때 6년이나 위인 형의 책꽂이에서 닥치는대로 책을 빼다 읽었다. 책에서 처음으로 쪽빛이란 말을 접했다. 색깔을 나타내는 추상명사인 줄 알았다. 책을 읽으면서 만나는 색깔들, 담홍 주홍 등황 초록 쪽빛 연두 보라…, 색깔이 어느틈에 그의 머리속을 가득 메웠다. 색깔은 그의 화두였다. 특히 쪽빛에 대한 그의 관심은 집착이라 해야 할 정도였다.
 중앙대에서 식품공학을 공부했지만 그의 머릿 속에는 여전히 새깔들이 무지개처럼 피어오르고 또 번졌다. 여행을 좋아해서 고속버스회사에 취직을 했다가 그만 두고 책방을 냈다. 책을 원 없이 읽을 수 있는 직업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책방을 하면서 그는 색깔에 관한 책을 뒤져 읽었다. '전통문화'라는 잡지에서 제주도 갈옷에 대한 글을 읽고 염료식물에 빠져들면서 천연염료에 관한 논문들을 이잡듯 뒤져냈다. 마침내 집에서 냄비에 물을 끌여가며 천연 염료를 추출하는 무모한 실험을 시작했다.
 KBS에서 방영한 전통 염색장인 윤병운 옹(무형문화재 115호)의 이야기에 눈과 귀가 한꺼번에 번쩍 띄었다. 나주까지 먼길을 몇번씩 오가면서 염색장인 윤병운옹과 정관채씨(47)를 만나 가르침을 받고 천연염료에 관한 자료를 얻어냈다. 96년 정씨로부터 쪽씨를 얻어 밭에 심으면서 유상열씨의 고단하지만 즐거운 쪽빛 인생이 시작되었다. 어머니의 병환이 깊어 서울 생활을 청산하고 고향 춘천의 버들개로 돌아왔다. 서울에서 직장생활(KT)을 하는 아내가 이듬해 가까운 가평으로 자리를 옮기면서 어머니의 병환을 수발하는 한편 쪽을 재배하고 쪽염료를 우려내는 본격적인 작업을 시작했다.
 색깔은 인간의 역사와 함께 생활문화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아름다움을 찾는 것은 인간의 본능이자 욕망이죠. 특정한 색깔로 지배계급의 권위를 나타내고 특히 이성에게 어필하고싶은 욕망이 색채를 통해 나타나기도 했죠. 그러고보니 중국 황제의 색깔인 노랑이 동양 오방색의 중심 색깔이 되고 빨강이 제후국 군왕의 색깔로 쓰인 것이나 서양의 성직자와 왕족들이 보라색 주홍색으로 권위를 나타낸 것도 색채문화의 한 단면이다. 하지만 지금 색채는 우리 생활 갈피갈피마다 배어있는 문화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

천연염료 작업 분업화 돼야

 천연염료를 추출하고 활용하는 것이 경제성이 없다는 사실은 분명합니다. 모든 과정이 수작업을 통해 이루어져야 하니 품이 많이 들고 공업적 염료에 비해 엄청나게 맣은 시간이 필요하니까요. 게다가 아직은 수요와 공급이 특별한 선에서만 이루어져 대중화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는 천연염료도 분업화되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원료인 염료식물을 재배하는 사람, 염료를 만들어내는 사람, 염색하는 사람, 염색한 직물로 의복을 비롯한 각종 생활용품을 만들어내는 사람, 완제품을 판매하는 사람…. 그렇게 분업화되고 대량생산이 가능해지면 천연염료 제품이 적당한 가격에 대중화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다.
 '천연염색전문가'가 그의 명함에 새겨진 직함이지만 생계를 꾸려나가는 것은 그의 부인 몫이다. 애초에 돈을 벌겠다고 시직한 일은 아니라도 이 일로 생계가 해결된다면 좋겠죠. 필요한 자재 특히 한 필에 50만원이 넘는 모시를 필요할 때 사 쓸수만 있어도 좋겠는데…. 아내에게 늘 미안하다고 했다. 즐겁지만 돈벌이가 되지 않는 일에 매달려 사는 고집스런 장인, 그의 마당에 널려있는 쪽빛 모시가 초가을 바람에 너울거린다. 쪽빛보다 맑고 순수한 그의 마음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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