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년 경력 베테랑 악천후 때 ‘진가’

▲ 도선사 김국상씨가 러시아 선박 ‘퍼시픽 브리지호’를 정박시키기 위해 출발전 부두에서 바다의 상황을 확인하고 있다.

하루 10회 이상 도선 격무… 새우잠 일쑤
지역경제 발전·해양물류 첨병역할 자부

동해안 일대에 대설주의보가 내려졌던 지난 12일 오후 동해항에서 6.4㎞ 떨어진 해상.

10t급 소형 파일럿 보트 한척이 안개와 진눈깨비 등 악천후를 뚫고 러시아 국적 석탄 화물선인 ‘퍼시픽 브리지’호로 서서히 다가갔다.

보트 갑판 위에 무전기를 들고 서있던 도선사(導船士) 김국상(63)씨가 ‘퍼시픽 브리지’호로 옮겨 타기 위해 화물선에서 내려준 7m 길이의 밧줄 사다리(Pilot ladder)를 잡았다. 그러나 3∼4m 높이의 성난 파도는 쉽사리 김씨의 승선을 허용하지 않았다. 배 옮겨타기는 도선사에게 가장 위험한 순간. 자칫 선박과 선박 사이에 끼어 부상을 당하거나 바다에 떨어져 목숨을 잃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날 김씨는 거친 파도와 사투를 벌인지 1시간여 만에 화물선에 올랐다. 그는 선장으로부터 배의 지휘권을 위임받은 후 ‘퍼시픽 브리지’호를 안전하게 동해항에 정박시킬 수 있었다. ‘위험하지 않냐’는 기자의 질문에 김씨는 “날씨와 배의 상황을 나에게 맞출 수는 없지 않냐”며 “여건이 좋지 않다고 도선을 거절하면 동해항의 명성이 떨어지는 만큼 이 정도 위험은 늘 감수해야 한다”고 말했다.

도선사는 ‘운하나 강 등의 좁은 수역이나 항만에서 선박을 조종해 항행 또는 접안이나 이안 업무를 수행하는 사람’이다. 따라서 도선사의 지휘를 받지 않고서는 입출항이 불가능하다. 책임과 역할이 큰 만큼 도선사 되기는 하늘의 별 따기다. 5000t급 이상 원양선에서 3등, 2등, 1등 항해사를 거쳐 5년 이상 선장업무를 수행해야 도선사 시험 응시자격이 주어진다.

동해항의 베테랑 도선사인 김씨의 경우 부산에 있는 국립 한국해양대를 졸업하고 바다 사나이가 됐다. 군생활도 해군에서 한 그는 원양회사인 범양상선(현 STX팬오션)에서 20년 이상의 승선 경력을 쌓은 뒤 도선사가 됐다. 이렇다 보니 도선사들의 평균 나이는 보통 50세 이상이다.

우리나라에는 동해, 인천, 부산 등 11개 항만에서 모두 233명의 도선사들이 활약하고 있다.

김씨는 지난 1993년 2월부터 동해항에서 근무하고 있다. 동해항에는 김씨를 포함해 모두 3명의 도선사가 일하고 있으며, 1인당 하루 평균 10회 이상 도선을 하고 있다. 도내의 경우 도선사 1명이 ‘동해항, 삼척항’과 ‘속초항, 옥계항, 묵호항’ 등 2개 권역으로 나눠 각각 1주일씩 14일 연속 근무하고, 7일을 내리 쉰다. 3∼4시간 단위로 밤낮없이 들어오는 배를 상대하다 보면 밤에도 편히 쉬지 못하고 새우잠을 자야 할 만큼 근무강도가 높다.

김씨는 “도선사는 아플 권리도 없다”며 “강한 체력과 책임감 등 자기관리가 철저해야 하는 직업”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도선사는 여전히 바다를 삶의 터전으로 삼고 살아가는 모든 마도로스들의 꿈이자, 희망이다.

김씨는 “동해항의 첫 얼굴이자 해상물류의 첨병이라는 자부심과 사명감을 갖고 일하고 있다”며 “동해항의 컨테이너선 입·출항을 계기로 지역과 경제발전에도 기여할 수 있게 돼 보람이 크다”고 말했다.

동해항/정동원 gondori@kado.net

저작권자 © 강원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