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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요시선]정의가 강물처럼 흐르는 세상

정인수 수요포럼 회장

데스크 2020년 03월 03일 화요일 11 면
▲ 정인수 수요포럼 회장
▲ 정인수 수요포럼 회장

이스라엘 여로보암 2세(BCE 786-746) 시절 정치적으로나 경제적으로 전성기를 맞았으나 향락에 빠져 빈민은 착취를 당하는 등 사회정의가 짓밟혔다.그러자 예언자 아모스는 하느님의 분노로 이스라엘이 멸망에 이르렀음을 개탄하면서 ‘정의가 강물처럼’이라고 외쳤다.

인류의 보편적 가치이자 최고의 선은 정의가 아닐까 한다.인류 발전을 위해서는 정의가 보편화돼야 하는 것이다.그럼 정의는 과연 무엇인가.철학적 명사로는 사회를 구성하고 공정한 도리라고 정의(定義)하고 있다.곧 정의와 공정은 동의어인 것이다.성경 전편을 보면 정의와 공정이라는 단어가 수 없이 등장한다.

필자는 그리스의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적 정의를 논하거나 거창한 글로벌적 차원의 정의가 아니라 우리가 사는 세상 안에서의 정의를 논하고자 한다.정의의 유형은 다양하다.자유와 권리의 정의,사법적 정의,경제적 정의,응보적 정의(탈리오법칙),분배의 정의,국제간 정의 등 수많은 세분화를 할 수 있겠지만 필자는 우리 일상 속 정의와 불의,공정과 불공정이 혼재해 가치관을 타락시키고 삶의 질을 추악하게 하는 경우를 예로 들어 사상에 근거,논리를 펼치고자 한다.

인간에게 내재된 본성은 선악의 이중적이다.우리는 끊임없이 선악의 충돌 속에서 살아간다.양심의 발로는 선이지만 비양심적인 발로는 악이다.선이 우선할 때는 정의(공정)가 성립되지만 악이 작동할 때는 사악하기 그지없다.악은 탐욕의 근원이며 정의를 파괴하고 인간사회를 병들게 한다.연일 쉴 새 없이 언론매체를 통해 접하는 사회상을 보면 정치·문화·경제·사회 등 모든 분야에서 정의는 존재하지 않고 불의만이 판을 치는 것으로 보여진다.마치 악취가 진동하는 시궁창을 연상하게 하는 것이다.종교도 마찬가지다.세상 구원을 위해 빈자로 온 예수를 믿으며 청빈과 이웃 사랑의 그리스도 정신인 공정과 정의를 위해 얼마나 실천했는지 묻지않을 수 없다.비단 기독교뿐 아니라 모든 종교는 공의의 실행에 있음은 두말할 나위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필자를 비롯한 현대인들은 정의로운 세상을 위해 얼마나 소금과 빛의 역할에 충실했는가의 문제다.솔직히 고백하면 선보다는 악을 선호하는 방식의 삶에 익숙하게 살아온 경우가 대부분일지 모른다.명색이 사회지도층 인사들은 공공의 이익을 위해 얼마나 정의로웠는지 차제에 성찰할 필요가 있다.권모술수를 동원해 상당한 지위에 오르거나 권력에 빌붙어 입신출세하거나 재화를 쌓는 것 역시 불의이며 특권이 존재하는 자체가 정의가 아니다.절대 권력에 맞서기보다는 굴종을,또는 절대 금력의 유혹에 결탁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인간은 인간적일 때만이 정의가 존재한다.고로,정도의 차이는 있을지라도 “나는 올곧게 정의로운 세상을 위해 살아왔다”고 자부하는 인간적인 사람이 많을수록 살맛나는 세상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은 불변의 철칙이다.‘정의가 강물처럼 흐르는 세상’은 기원전부터 온 세상이 영원성을 갖고 추구해온 명제이자 끊임없이 지향해야 할 최고의 가치임을 거듭 강조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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