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은 가장 잔인한 달/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키워내고/추억과 욕정을 뒤섞고/잠든 뿌리를 봄비로 깨운다(후략)” 4월하면 떠오르는 ‘잔인한 4월’은 엘리엇의 ‘황무지’란 시로부터 유명세를 탔다.이 시는 정신적 메마름과 인간의 일상적 행위에 대한 믿음의 부재,생산이 없는 성(性),재생이 거부된 죽음 등 전후 황폐한 정신적 상황을 형상화했다.

전쟁은 정신적 박탈과 혼돈,황폐함과 참담함의 극단을 보여준다.전쟁의 참담함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고 인간 본성이 무엇인지를 되묻는다.실존의 문제가 된다.그러나 전쟁이 끝나면 인간은 새로운 시작을 갈망할 수밖에 없다.그것은 인간이기 때문이다.시인이 새로운 시작을 하려는 4월을 두고 역설적으로 잔인하다고 한 뜻을 되새긴다.

돌이켜 보면 4월은 우리 역사속에서도 잔인했다.꼭 60년전의 4·19가 있다.민주혁명이라는 역사적 평가를 받으면서도 여전히 4·19는 진행중이다.세월호!6년 전 4월16일,이 날을 어찌 잊을 수 있겠는가.수백명의 어린 생명을 수장해야만 했던 기억은 아픔이란 표현으로는 부족하다.우리에게 4월은 잔인함 그 자체였다.

2020년의 4월은 어떤가.전세계에 몰아닥친 바이러스 감염 공포는 상상을 초월한다.이미 수십만이 감염됐고,수만명이 목숨을 잃었다.경제적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다.공존보다는 극단적 이기주도가 머리를 들고 있다.사회적 거리두기를 위해 외출마저 자제해야 한다고 강조하지만,이렇게 되면 어려워지는 자영업자들과의 이해충돌 현상도 나타난다.

지금과 같은 상황이 계속된다면 특히 사회적 약자가 감내해야 하는 고통은 더 크다.바이러스에 쉽게 노출되기 십상이다.목숨마저 위험한 지경에 빠지기 쉽다.사회적 관계도 파탄날 지경이다.각종 모임이나 행사는 취소되고 문화예술활동은 이미 위축됐다.사회는 서로 경계하는 의식만 난무하고 있다.바이러스 공포는 ‘불신의 바이러스’를 확대 재생산하고 있다.

그러나 희망의 끈을 놓으면 안 된다.국민은 코로나와의 전쟁을 선포했다.반드시 승리하자.희망의 4월을 맞이하자.천남수 강원사회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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