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성 변호사

세상이 얼마나 더 잔혹해질 수 있을까.‘n번방’ 사건의 끔찍한 실체가 우리 모두를 분노케 한다.최대한의 보호를 받아야 할 아동·청소년에 대한 피해도 다수에 이른다고 하니 참담한 마음을 금할 수 없다.멀리 떨어진 곳에서 발생한 ‘남의 일’일 뿐일까?

결코 그렇지 않다.언론보도에 따르면 얼마 전 피의자 신상공개 제도를 통해서 그 신상이 공개된 ‘n번방’ 피의자 조 모보다 앞서서 수사가 진행된 다른 가해자의 항소심 재판은 춘천지법에서 계속 중이란다.이른바 ‘제2 n번방’ 운영자에 대한 제1심 공판도 마찬가지다.춘천지법이 이를 심리할 예정으로 있다고 한다.

비대면 상황에서 협박을 가하여 음란행위를 하도록 강요하는 등의 형태로 피해를 양산해 왔으니,설령 가해자가 강원지역에 거주하고 있지 않다고 하더라도 우리 지역 내에서 유사한 내용의 또 다른 피해가 발생하지 않았으리라 단정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두려움에 떨고 있는 숨은 피해자들에게 말해주고 싶다.성폭력 피해는 어떠한 경우에도 어떠한 이유로도 피해자 잘못이나 책임이 결코 아니다.피해자가 부끄러워해야 할 아무런 이유도 없다.비난 받고 처벌 받아야 마땅할 유일한 사람은 가해자뿐이다.용기를 내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알지만,겁을 내어 섣불리 단념하거나 포기하지 않기를 바란다.모든 피해자에게는 보호받을 자격과 권리가 있다.

피해자 보호를 위해서는 지역사회와 주변인들의 역할도 매우 중요하다.차마 쉽게 입 밖에 꺼내기 어려운 고민들로 우울해 하면서 평소와는 현저히 다른 행동을 보이는 누군가가 가까이에 있다면,그 사람이 도움을 청하기를 원할 때 기꺼이 그에 응하여 도움 줄 수 있도록 마음의 준비를 해 두자.혹시 도움을 필요로 하는 어려움에 직면해 있는 것은 아닌지 먼저 물어봐도 좋겠지만,이때는 피해자의 상처를 또 한 번 후벼 파는 일이 절대로 없도록 최대한 조심스러운 마음가짐으로 다가가야만 한다.언제든 도움을 주겠다는 굳은 신뢰를 주되 무슨 일이 있더라도 옆에서 채근을 하는 일은 삼가라.특히 이웃 어른들이라면 가까이에 성폭력 피해로 힘겨워하는 아동·청소년이 숨어있는 것은 아닌지도 주의 깊게 살펴 주시기 바란다.

성폭력 피해자는 자기 비용을 들이지 않고도 대한법률구조공단을 통해서 법률구조를 받을 수 있다.아동·청소년대상 성범죄 피해자와 성폭력범죄 피해자는 소득수준에 무관하게 법률구조를 받을 수 있게 돼 있다.사단법인 한국여성변호사회도 ‘n번방’ 사건 등 이른바 디지털 성 착취 피해자들에게 무료로 법률조력을 제공한다.한국여성변호사회는 피해자에 대한 법률상담,조사입회와 소송지원 등 관련된 전 과정에 대한 무료지원을 할 예정이다.영상삭제 등에 관해서는 ‘여성긴급전화 1366’을 통해 한국여성인권진흥원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

늘 반복되는 진부한 언사이지만,성폭력은 근절돼야 하며 피해자에게는 반드시 최대한의 보호와 배려가 있어야만 한다.‘n번방’ 사건의 참혹한 현실은 우리와 멀리 떨어져 있지 않다.먼 산 불구경하듯 할 일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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