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계령에 야생동물 이동을 돕기 위한 생태통로를 설치한다는 보도를 보고 나서야 "아차"하고 한숨을 내쉬는 모습들이다. 남설악을 관통하는 한계령의 구절양장을 아름답기 그지없다고 느끼는 것은 인간의 기준일 뿐이다. 동식물 입장에서는 이 도로가 수십 년 동안 자신들을 꼼짝할 수 없게 만든 '단절벽'이자, 파괴된 서식처다. 동식물의 이동을 돕기로 한 것은 이런 무모한 자연파괴를 뒤늦게나마 깨달아 자연 앞에 반성하는 모습 같기도 해 그래도 신선하다. 그러나 인간이 헝클어 놓은 자연생태계를 회복시키려는 이같은 시도는 이제 시작이라는 점을 깊이 깨닫지 않으면 안 된다.

백두대간 남한 쪽 670㎞를 가로지르는 도로는 1990년까지만 해도 23개에 불과했다. 그 도로는 현재 72개로 증가했지만 아직도 도로개설 수요는 곳곳에 산재해 있다. 그러나 백두대간의 중심이며, 가장 도로수요가 높은 강원도 구간에 생태통로가 만들어지기는 이미 설치된 구룡령에 이어 이번이 겨우 두 번 째다. 굳이 자연생태계에 대한 우리의 인식지수를 메긴다면 '0'인 셈이다. 정부와 강원도는 이미 3년 전 백두대간 구간을 `녹지생태축'(그린 네트워크)으로 조성하기로 계획을 발표했었다. 이 계획의 근간은 단절된 생태계를 생태통로로 이어 전 구간을 하나로 연결한다는 것이다. 그 후 그 계획이 어떻게 추진되는지는 밝혀지지 않다가 이번에 그 일환으로 보이는 '한계령 생태통로' 계획이 나온 것이다. 정부나 자치단체의 투자지수도 '0'에 가깝다는 것을 새삼 인식하게 하고 있다.

자연환경보전법은 생태통로(Eco-corridor)를 '도로·댐·수중보·하구언 등으로 야생 동·식물의 서식지가 단절, 훼손, 파괴되는 것을 방지하고 이동을 돕기 위한 인공구조물이나 식생'으로 규정하고 있다. 이때문에 생태통로를 인간이 동·식물에게 배려하는 시설로 인식하기 쉽다. 그러나 이 시설은 결과적으로 자연으로부터 단절된 인간의 생활을 자연으로 더 가까이 가게 하기 위한 인간을 위한 시설이라고 이제부터라도 바꿔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된다. 따라서 생태통로는 높은 고개에 육교형 동물이동통로를 만드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다. 도로, 철도 뿐 아니라 공원, 체육시설, 택지, 공단을 만들면서 하나의 생태계를 여러 개의 작은 생태계로 분할해 놓았다면 하다못해 가로수나 작은 공원들이 징검다리처럼 놓여 새나 곤충이라도 이동할 수 있는 통로를 만들어야 도시가 사는 길임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이런 인식결여로 지금 춘천에서는 애막골에서 후평동 도심 깊이 작은 산이 흘러 들어와 천혜의 생태통로 역할을 하고 있는 데도 이미 두 군데나 도로를 내며 소나무능선을 동강내버리는 무모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생태통로에 대한 재인식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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