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초 청호동 '아바이마을'이 사라지고 아바이마을로 건너가는 뱃길인 '갯배'도 자리를 옮기는 등 속초의 이른바 실향민문화가 마치 '荒城옛터' 모양 사라지거나 원형을 잃어가고 있어 안타깝기 짝이없다. 그 훼손되고 상실되는 현장을 목격한 사람치고 안타까움은 물론 더욱 처참 혹은 처량한 심정으로 떨어지지 않을 수 없었을 듯싶다.

역사 유적을 허물고 각종 문화재들이 잇단 수난을 당하는 현실 속에서 강원도 하고도 저 한쪽 구석에 있는 속초 물건너 마을 청호동이 속초항 관광선 부두공사로 철거된들, 청초호 신수로를 연결하는 최신 아치교량 건설공사로 갯배가 다른 곳으로 운항장소를 이전하든 뭐 특별히 문제될 것 있느냐는 논리라면 되물을 말이 있다. 그렇다면 지난 50 년 간 청호동에서 살아온 실향민들의 마음은 도대체 무엇이었는가? 또 그렇다면 어찌하여 '가을동화'는 청호동 부근 갯배에서 명장면을 찍어야 했는가? 이 질문에 딱히 적절히 대응할 말이 있는가?

실향민문화가 고스란히 남아 있던 이 곳을 하루 아침에 일그러뜨린 일은 실향민뿐 아니라 대다수 주민들의 공감을 얻기 어렵다. 부두·다리 공사는 해야 할 일이나 문제는 이런 공공·공익적 대형 공사를 벌이기 앞서 당국이 실향민문화를 보전하려는 문화행정적 마인드를 가져 보았느냐 하는 점이다. 갯배를 완전히 철거한 것도 아니고 청호동 일부 주민을 미리내마을로 이주시킨다 하여 할 일 다했다 믿는다면 이거야말로 지나친 힘의 논리다. 이런 식이라면 우리의 경제·사회·문화질서가 계층화하는 데 그치지 않고 강자의 경제·사회·문화가치관만이 지배·주도적 역할을 하여 약자는 식민지화하고 약자의 가지관 특히 문화는 점점 쇠약해질 수밖에 없다. 이런 이유로 우리는 실향민문화를 이렇게 푸대접하고 무시하는 행위에 심한 저항감을 느낀다.

6·25 이후 함경도에서 내려온 피난민들이 통일이 되면 배를 몰고 고향땅을 밟기 위해 북쪽과 가까운 청호동에 모여 산 그 눈물겨운 이유 하나만으로도 청호동과 갯배는 원형 그대로 유지됐어야 했다. 사라지는 옛 정취에 지역문화의 정체성은 물론 문화적 줏대도 못지키고 천격사회로 전락하는 데 대한 주민들의 심리적 갈등도 헤아려야 했다. 남들은 별 볼일 없는 곳(것)도 가치 있는양 부풀려 사람들을 끌어모으는 판에, 경주와 풍납토성과 삼청각을 구출하려고 아우성치는 때에, 한쪽에선 '황성옛터'가 될까 봐 문화유산에 예산을 아끼지 않는데 DMZ 외의 유일한 분단문화, 가치 있는 실향민문화를 이런 식으로 훼손해도 좋은지 거듭 묻는다. 다시 곰곰히 고민하여 대안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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