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경기와 혼탁한 시국 속에 한가위를 맞는다. 미국 테러 여파로 세계 정세마저 불안한 시기에 맞는 추석명절이다. 그래도 연휴가 시작되는 날부터 전국의 도로가 귀성차량으로 메워지는 걸 보면 민족의 큰 명절 한가위의 의미가 조금도 퇴색하지 않았음을 느낀다. 심각한 경제난과 불경기에 뒤숭숭하기 짝이없는 국내외 정세에도 불구하고 고향을 찾는 사람들의 마음 속에는 부모 형제 친지들과 함께 쇨 한가위 명절의 즐거움이 가득하다. 수천년 농경민족의 순후한 정서가 핏줄 속에 녹아있음을 확인한다.

유례없는 봄가뭄을 이겨낸 농촌 들녘엔 오곡이 영글고 풍성한 수확의 계절을 맞은 농부들이 가을걷이에 여념이 없다. 하지만 쌀값이 떨어지고 정부의 쌀정책마저 흔들리고 있어서 수확의 기쁨보다 걱정이 더 쌓이는 올가을이다. 도시에 나가있는 자녀들도 어렵기는 마찬가지여서 올 한가위는 즐거움만큼 걱정도 큰 명절이 되었다. 명절 전후 오랜만에 만난 가족 친지들과 나누는 대화 속에 시국을 걱정하고 불투명한 앞날을 근심하는 어두운 얘기들도 여느 해보다 훨씬 많이 오갈 것같다. 그런 명절 민심을 정치권이 제대로 읽고 겸허하게 수용할 태세가 되어있는지 궁금하다.

나라 사정이 어려운 속에서 맞는 명절인만큼 펑펑 쓰고 흥청거리는 한가위가 아니라 검소하고 절약하는 씀씀이 속에서 명절의 즐거움을 나누는 한가위가 되어야 할 것이다. 상다리가 부러지게 차리는 차례상보다는 정성 담긴 소박하고 정갈한 차례상으로 조상을 모시고 가족과 친척이 함께 모여 오붓하면서도 즐거운 덕담을 나누는 명절이 되어야 할 것이다. 명절 준비로 고단한 주부들의 일거리를 온가족이 나누어 맡는 것도 이른바 '명절증후군'을 막는 지혜로움이고 화목한 가정을 이루는 방법이다.

나와 내 가족만의 즐거움에 빠져 소외된 이웃의 우울한 명절을 외면하는 일이 없어야 한다. 사정이 있어 고향을 찾지못하는 사람들을 대신해 외로운 노인들을 위로하고 어려움에 빠져 있는 이웃을 위해 송편 한 접시를 나누는 따뜻한 손길이 명절을 명절답게 한다. 소년소녀가장 독거노인 장애인 등 외롭고 쓸쓸한 이웃에 나눔의 온정을 뻗쳐 한가위 환한 보름달을 함께보는 명절이 되어야 한다. 그런 나눔의 명절이 바로 우리민족의 공동체 의식을 심어주는 밑바탕으로 이어져 온 것이다.

명절 연휴가 지나고 나면 신문 방송에 의례히 등장하는 가슴 아픈 사고 소식들도 이번 한가위엔 없었으면 좋겠다. 질서를 지키고 양보하는 마음이 앞서면 들뜬 명절 분위기에서 발생하는 사고도 훨씬 줄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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