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민들이 쌀가마 야적시위를 벌이다가 군청진입을 시도하는 사태까지 발생하는 등 쌀값 보장을 주장하는 집단시위 수위가 갈수록 높아지고 있는 가운데 농협도 농민의 소리에 합세하는 자세로 돌아섰다. 강원농협지역본부는 도내 전 회원농협 조합장들과 함께 낸 건의서를 통해 '정부의 추가 시가(市價)수매 가격을 정부수매 2등 품 가격인 5만7천760원을 보장 할 것'과, '농민 요구의 벼 수매가격이 책정될 수 있는 손실보전대책 마련과 (농민과) 농협과의 대립양상을 해소시켜 줄 것' 등을 촉구했다. 농협의 이같은 건의가 두 가지 사실을 새삼 깨닫게 하고 있다. 우선 농민들이 생산비라도 건져 적자영농을 보진할 수 있도록 발등의 불부터 꺼야 한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추곡매입을 통한 가격지지 정책이 이미 한계에 이른 마당에 그 다음 대책이 무엇이냐 하는 것이다.

도내 쌀 사정만 놓고 보더라도, 올해 생산량은 22만9천t이며 이 가운데 3만4천t을 1차 수매했다. 다시 2만2천85t을 2차 수매한다고 하더라도 잔량은 시장에 내다 팔아야 한다. 핵심은 정부는 2차 수매가격을 시장가격과 같은 수준인 5만2천 원 선으로 수매하겠다는 것이고, 농민은 1차 수매 때 2등품 값인 5만7천760원이 돼야 한다는 것이다. 계산상으로 생산량의 25%는 정부가 가격지지를 해줘야 일단 올 농사를 결산할 수 있다는 주장이고 이를 농협이 '옳다'고 편 든 것이다. 농가경제 파탄에 항의하는 농민들의 집단행동은 농촌문제가 본질적인 난관에 부딪히고 있음을 시사하고 있는 것이며, 사실 그런 사정을 지금 누구나 공감하고 있다. 따라서 농협의 그런 주장은 막연히 농민들의 '역성들기'로만 볼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발등에 떨어진 불을 끈다고 해도 앞으로 쌀 농사가 가야할 길을 험난하기 그지없다.

계속된 풍작으로 쌀 재고량이 적정수준을 훨씬 넘어 정부재정을 압박하고 있는 가운데 UR협상에 따른 의무 수입량도 증가하고 있다. 설상가상 2005년부터는 쌀 시장 추가개방까지 예상되고 있다. 여기다 가격지지정책의 결과로 국내 쌀 가격은 국제시세보다 최고 5배나 비싸고, 생산비마저 지나치게 높아 농가수지는 최악의 상황이다. 쌀 문제에 관한 한 농협이 정책과 농촌현실 사이에서 어찌해 볼 수 없는 지경에 이른 것이다. 농민들로부터 늘 정부 편이라는 소릴 듣던 농협이 '농협과의 대립양상을 해소시켜 달라'고 요구하는 것은 농협의 그런 고민 때문인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그렇다고 쌀 문제를 목소리만 높이며 시간을 소비할 수는 없다. 그런데도 정부와 농민, 전문가와 전문기관이 머리를 맞대고 진지하게 해법을 찾으려는 모습은 보이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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