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효 림 백담사 스님
진시황제의 환관으로 조고(趙高)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진시황제가 여행하던 중 평대(平臺:河北省 鉅鹿縣)라는 곳에서 병으로 죽자, 측근에서 모시는 자신의 직위를 이용하여 황제가 죽었다는 사실을 숨긴다. 아무도 황제의 침실 근처에 가까이 오지 못하게 하고, 승상 이사(李斯)와 손을 잡고 결탁한다. 거짓으로 조서(詔書)를 꾸며, 황제의 맏아들 부소(扶蘇)와 장군 몽염(蒙恬)을 자결하게 했다. 그리고 우둔하고 탐욕스러운 시황제의 막내아들 호해(胡奚)를 2세 황제로 만들어 조정을 마음대로 조종하였다. 이어 진시황의 아들딸들을 모조리 죽인다. 뒤이어 진시황을 도와 중국 천하를 최초로 통일하는데 가장 큰 공을 세웠으며, 자신과 결탁했었던 승상 이사조차도 죽이고 만다. 그리고 자신이 승상이 되어 황제를 허수아비로 만들고 모든 권력을 한손에 쥐었다.

그런 그가 한번은 황제가 허수아비이고 자신의 권력이 얼마나 막강한지를 시험한다. 황제 앞에 망아지 한 마리를 갖다 놓고, 황제에게 물었다. 저 뜰에 놀고 있는 것이 무엇이냐고, 그러자 멍청한 황제는 망아지가 아니냐고 한다. 그러자 조고는 짐짓 깜짝 놀라는 시늉을 하며, 그것은 망아지가 아니라. 사슴이라고 했다. 이렇게 황제와 조고가 망아지다 사슴이다 하고 논란을 하다가 주변에 있는 다른 신하들과 궁녀들에게 물어 보기로 한다. 이때 조고에게 모든 권력이 있는 것을 아는 주변의 신하들은 모두 황제를 속이고 망아지를 사슴이라고 말한다.

결국 천하는 어지러워져 군웅(群雄)들이 활거하고 나라가 혼란에 빠지자 조고는 다시 호해마저 죽이고 진시왕의 큰아들이었던 부소의 아들 자영을 황제로 옹립한다. 그러나 자영은 조고를 죽이고 그 일족을 처벌하지만 나라가 망하는 것을 막지는 못했다. 저 유명한 한고조 유방이 쳐들어와 진나라는 완전히 멸망하고 만다.

위의 고사는 중국 최초의 통일국가이며, 중앙집권제의 절대왕권이 어떻게 멸망하는 가를 보여주는 고사다. 여기서 내가 주목하고 싶은 것은 황제 호해의 앞에서 조고가 망아지를 사슴이라고 우길 때 수많은 신하들이 진실을 말하지 않고 침묵하거나 거짓말을 하는 조고의 편을 들었다는 것이다. 아니 그보다 앞서 진시황제가 죽었을 때, 승상인 이사가 조고와 결탁하지 않았다면 진나라는 물론이고 이사 자신도 그렇게 처참하게 죽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사는 권력에 눈이 멀어 조고의 꼬임에 거짓을 꾸며 스스로 멸망을 불러왔다.

오늘날의 사회도 옛날과 별반 다르지 않다. 목숨을 걸고라도 진실을 말해야 할 지성(知性)이 자신의 이해관계에 따라 특정권력과 결탁하고 침묵하거나 동조하게 되면 나라도 망하고 자신들도 무덤을 파게 된다. 지성은 진실을 말해야 할 운명을 타고난 존재며 진실을 말해야 할 역사적 사명이 있다.

만약 지성을 대변해야 할 특정한 언론들이 자신들의 특정한 목적 때문에 진실을 외면하기도 하고, 또 가끔은 침묵하기도 하고, 또는 왜곡시키기도 한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실제로 지금 우리의 주변에는 그와 같은 일이 자주 일어나고 있다. 대통령이 하는 말도 왜곡 시키는가 하면, 대통령에 출마한 후보들의 말도 왜곡되고 있다. 어떤 것은 침묵으로 진실을 숨겨주기도 하고, 어떤 경우는 진실을 왜곡시켜 확대하기도 한다. 정치인만 당리당략에 놀아나는 것이 아니라, 언론과 지성들조차도 당리당략에 놀아나고 있다. 그리하여 자신들의 이해관계에 맞으면 거짓도 옳다고 하고, 자신들의 이해관계에 조금이라도 어긋나면 틀렸다고 말하고 있다. 그리하여 온 나라 안을 당리당략으로 몰고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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