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같은 반민주적이고 독재적인 상황에서 국민이 의지할 수 있는 곳은 국회뿐이다. 의원은 국민의 심부름꾼이 아닌가. 우리가 국회를 외면하면 국민은 어디에 의지할 것인가. 하루빨리 국회에 들어가 자유당과 싸우자”

1954년 11월 27일 낮 국회(3대국회) 본회의에서 여당인 자유당이 제출한 초대 대통령(이승만)에 한해 종신 출마를 허용하는 내용의 헌법 개정안이 부결되자 야당인 민주당은 “이겼다. 만세”를 외치며 환호했다.

재적의원 203명 중, 202명이 투표한 결과 찬성 135표로, 가결정족선인 재적 3분의 2보다 1표가 적어 부결된 것. 하지만 모 원로수학자의 자문을 받은 이 대통령은 사사오입으로 가결된 것이라며 자유당에 대해 가결선언을 하라고 지시했다.

29일 상오 본회의에서 사회자인 최순주 부의장이 “이틀전의 부결선포는 착오였다. 정정해 가결을 선언한다”고 번복하자 야당의원들은 “사기다” “무효다”라고 외치며 최 부의장의 멱살을 잡고 사회봉을 뺏는 등 회의장은 아수라장이 됐다. 이날 하오 민주당의원총회에서 대다수의원들은 자유당의 불법·폭거·만행에 항거하는 뜻에서 국회를 무기한 보이코트하자고 주장했다. 이에 조병옥 대표최고의원은 “국회는 국민의 전당이지 자유당의 것이 아니다. 국민의 대표인 우리가 지키지 않으면 누가 지키겠는가”라며 다음날부터 다시 등원했다. 앞의 말은 즉각 등원을 역설한 조 대표의 열변이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결정에 반대하는 촛불시위가 오늘로써 48일째를 맞는다. 이러한 쇠고기 수입반대-촛불시위 분위기 속에서 18대 국회가 임기를 시작하고도 문을 열지 못한지 20일째가 된다.

지난 48일 동안 우리나라 특히 사회에는 엄청난 태풍이 몰아치고 있고 갖가지 바람 후유증은 계속되고 있다. 무엇보다 촛불시위는 국민적인 파워와 파장을 과시했으며 뒤이어 화물연대와 건설기계노조 등의 파업으로 전국의 주요항만과 상당수 건설공사장은 사실상 마비상태가 되고 있다. 여기에다 민주노총은 파업단행을 예고하고 있어 사회혼란과 정체는 더욱 가속화 될 전망이다. 그렇지 않아도 유가와 환율의 급등, 물가앙등 등 소위 3고와 1저성장으로 우리 경제는 더욱 어려워지고 국제신인도도 서서히 떨어질 조짐 속에 정상화 기미는 아직 보이지 않아 국민들이 겪고 있는 어려움과 고통은 이만저만한 게 아니다.

물론 사회와 경제 등 나라 상황이 이지경이 된 데는 국정운영의 1차적인 책임을 맡고 있는 새 정부의 과신·자만·미숙과 준비부족 등에 있다. 그러나 2차적인 책임은 정부를 적절하게 감독·감시하고 견제·선도하지 못한 한나라당 등 정치권에 있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걱정이 되는 것은 민주당 등 주요야당이 미국과의 재협상을 등원조건으로 내세우고 촛불시위에 동참해오고 있는 사실이다. 소위 정보사회-인터넷시대와 어울린 이번 촛불시위는 전례 없는 새로운 사회현상, 국민의 의사표시 방법으로서 앞으로 전문학자들의 다양한 분석이 나올 것이다. 일반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특징은 국민의 직접정치, 직접민주주의의 대두라는 점이다. 이는 기성정치권·제도정치권에 대한 불신과 반발에서 출발한 것이다. 정치가 민의-민심의 활발한 대변역할을 충실하게 해왔다면 직접의사 표출은 그다지 거대하지 않았을 것이다. 민주당 등은 언제까지 장외투쟁을 계속할 것인가.

물론 쇠고기 파동에 정부 못지않게 책임이 있는 한나라당은 야당이 떳떳하게 등원하도록 과연 적절하고 합당한 노력을 했는지 반성해야 할 것이다.

긴 이야기 할 것 없이 국회는 하루빨리 무조건 개원되고 각 당 의원들은 모두 등원해 쇠고기문제 등 제반현안들에 대해 정부가 바르게 해결할 수 있게 대안도 내고 감시하고 채찍질을 해야 한다. 민주체제에서 어떤 이유로든 정당과 국회의원이 국회를 외면하는 것은 민주정치를 외면하고 국민으로부터 부여받은 책임을 도외시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언론인·전 고려대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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