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호영

양구군 의회사무과장
내가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이니까 아마 대여섯 살 때 쯤이라 기억된다. 밥 외엔 별로 먹을 게 없던 시절 그나마 우리 집은 비교적 사는 게 좀 나아서 밥이라도 배고프지 않게 먹었는데, 우리 이웃집은 먹지를 못해 온가족이 온 몸이 붓고 못 일어나기도 했다고 한다. 그걸 부황이 들었다고 했다. 간식이라곤 계절따라 옥수수대의 단물을 빨아먹고 칡뿌리를 캐 먹으며 가을엔 무를 뽑아 먹은 건 흔한 일이고 메뚜기를 잡아 볶아먹는 게 고작이었으며 삶은 달걀이나 병 사이다 같은 건 소풍이나 운동회 때 아니면 맛 볼 수 없는 귀한 간식거리였다. 먹을 게 없는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는 지금의 우리 애들은 당연히 메뚜기를 먹지도 못하고 손에 잡지도 못한다.

그런 어느 날 모친을 따라 가서 처음 먹어 본 식당음식에 세상에 이렇게 맛있는 것도 있구나 하는 느낌이 지금도 생생한데 그 후로 다시 먹어보고 싶던 그 중국음식을 먹어 본 지는 몇 년이 더 지나서인지 모른다. 더 자라서 나중에 기억을 더듬어 본 결과 그건 중국집이었고 그 때 먹은 건 우동이었다. 지금도 자장면이라는 짜장면을 여전히 좋아하고 중국음식은 대부분 싫어하는 게 없다.

요즘 멜라민이 들어간 중국산 먹을거리 때문에 우리나라는 물론 온 세계가 공포에 휩싸여 있다. 오늘 아침 보도에는 옷, 신발 등에서도 발암물질이 검출되어 중국산에 대한 불안감이 전체적으로 확산되고 있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 소비되는 음식재료의 3분의 2가 중국산이라는 소문도 있어 누구든 멜라민으로부터 자유로운 사람이 없는 듯하다.

지금 나는 중국음식이나 기타 소비재들의 유해성에 대해 말하자는 게 아니고 이 음식재료에 대한 보도 중에 음식이 ‘먹을거리’ 또는 ‘먹거리’로 언론에서까지도 구분없이 쓰이고 있으며, 일상생활에서도 ‘먹거리’가 거부감없이 보편화되고 있는데 대한 옳은 표현을 짚어보고자 한다. 그럼 어떤 표현이 맞는가.

국어사전에 ‘먹을거리’는 ‘사람이 먹고 살 수 있는 온갖 것’ 으로 되어 있고 ‘먹거리’는 ‘먹을거리의 잘못’으로 명확히 표기되어 있다. ‘먹다’와 ‘거리’가 합쳐져 ‘먹을거리’로 명사화된 것이다.

‘먹거리’가 맞다면 ‘보다’와 ‘거리’가 합쳐진 ‘볼거리’는 ‘보거리’로 불러야 하고, ‘듣다’와 ‘거리’가 합쳐진 ‘들을거리’는 ‘듣거리’로 불러야 옳다. 같은 변화를 거치는 단어들이 다르게 쓰이는 모순이 있는 것이다.

예외적으로 ‘음식점에서 완성된 음식을 구입하여 밖으로 가지고 나가 먹는 음식’이 ‘길먹거리’라는 단어가 따로 있다. 그리고 사용빈도에 따라 ‘삭월세’가 ‘사글세’로 바뀌긴 했지만 그건 주객이 전도된 꼴이다. 물론 말과 글이란 건 쉽게 알아듣고 알아보면 되기는 하나, 그 말이 어떻게 생겼는지 어원을 지키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볼거리’와 ‘들을거리’가 일반적으로 통용되고 있듯이 더 이상 ‘먹거리’가 ‘먹을거리’를 밀어내는 일이 없도록 하며, 차제에 짐승에게도 못 먹일 저질 중국산제품을 몰아내고 내 것이 가장 소중함을 느끼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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