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길기수 <민주노총 강원지역본부장>


최근 민주노총이 임금교섭과 단체교섭의 시기를 집중하여 총력투쟁에 돌입한 이후 방송과 언론은 매우 격앙된 목소리로 민주노총의 투쟁을 질책해 왔다.

‘붉은 머리띠를 풀어라’(중앙)에서부터 ‘이 가뭄에 연대파업 비상’(조선), ‘지금이 연대파업할 땐가’(한국), 심지어 ‘연봉 1억원이 넘는 조종사들이 파업이라니?’라는 등 매우 자극적이고 선동적인 제목과 내용으로 민주노총에 맹타를 가했다.

이러한 언론들의 보도내용에 기사의 객관성은 논외로 치더라도 우선 냉철한 이성과 비판이라는 언론의 기본적 태도를 상실한 것에 대한 안타까움이 먼저 앞선다.

시류에 영합하는 언론의 천박한 속성이 ‘이제는 말할 수 있다’고 하는 국민정부 시절에도 조금도 변하지 않고 되풀이되고 있는 현실에 대한 슬픔이다. 아니면 ‘아직은 말할 수 없다’는 국민의 정부를 가장한 독재권력의 시절이든가?

사실 자본주의는 자본가와 노동자가 대립할 수밖에 없는 현실을 근본적으로 인정하고 있다. 우리 헌법에서 보장하는 노동삼권이 그렇고, 노동자의 단결·교섭·쟁의를 보장하는 노동법이 그렇다. 자본주의에서 노동쟁의는 당연한 것이다. 하지만 우리의 대다수 언론은 이를 기본적으로 부정하든가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고 있다. 농민이 일년의 농사를 봄의 파종으로부터 시작하여 가을에 추수하듯 노동자는 1년 혹은 2년에 한번씩 법으로 보장된 임금협상과 단체협상을 통해 파종과 추수를 하는 것이다. 뛰는 물가, 뛰는 세금, 교육비 등을 따라잡기 위한 생활비 확보와 생산성 향상에 맞추어 자신의 권리를 찾고자 법의 보호 하에 사용주와 대립하는 것이다.

좀 냉철히 민주노총의 파업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우선 가장 난타를 당한 대한항공조종사노조. 한국만큼 비행기사고가 많이 나는 나라가 없다. 세계적 망신이다. 이는 무리한 운항규정으로 안전운항을 도외시 한 채 돈벌기에 급급한 항공사측의 태도에서 비롯된 것임을 추락사고 때마다 언론에서는 분석하고 보도해 왔다. 하지만 직접 비행기를 조종하는 당사자들이 안전운항을 위해 운항규정 만들 때 참여시켜 달라고 하자 항공사와 정부는 경영권 침해라고 몰아 부치며 파업을 강요하다시피 하였다.

서울대병원 등 환자를 볼모로 한 의료대란으로 매도당한 보건의료노조의 파업. 자신들만의 이익을 위해 의보수가를 인상하느라고 환자를 볼모로 수차례의 불법파업을 했던 의사들에게는 정부도 언론도 솜방망이로 대응하였다. 하지만 공공의료 쟁취와 월급 몇푼을 인상해서 생존권을 지키자는 몇몇 병원노동자들의 파업은 세상을 뒤집어엎는 것처럼 호들갑으로 온갖 불법딱지를 붙이며 탄압하고 매도하였다.

울산의 효성공장은 사제폭탄을 만들고 식칼과 용역깡패를 동원하는 사용자의 온갖 불법적 부당노동행위는 전혀 문제삼지 않고, 자신들의 생존권을 지키려는 노동자의 자위적 투쟁만 불법으로 매도하고 공권력을 투입해 진압하였다.

국민의 정부는 지난 3년6개월 동안 김영삼정권 5년의 507명 보다 많은 560명의 노동자를 체포하여 구속시키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공기업에선 노동자의 3분의 1이 퇴출되었고, 대우자동차는 하루 한날 1천750명이 정리해고 되기도 하였다. 100건이 넘게 고소고발된 레미콘사업주는 거리를 활보하고 다녀도 나이 육십이 넘은 늙은 레미콘 노동자는 불법주차했다는 이유로 도끼와 해머로 차량을 파손당하며 동료 300명과 함께 공권력에 짓밟혀야 했다. 이것이 국민의 탈을 쓰고 자행되는 김대중정부의 반노동자 정책과 폭압정치의 현실이며 민주노총의 파업이다.

공권력은 말그대로 공공의 권력이다. 공공을 위해 쓰여져야 하는 만큼 공정해야 한다. 그리고 언론은 어느 분야보다 공정하고 냉철해야 한다. 하지만 공정성을 잃어버린 공권력과 이성을 잃은 언론에 대하여 60만 민주노총 조합원은 노동자편을 들어달라고 절대 요구하지 않는다. 단지 공정하기를, 불편부당하기를 바랄 뿐이다.

마지막으로 가뭄에 웬 파업이냐고 했는 데, 민주노총이 파업에 돌입하자 불행 중 다행으로 비가 내리기 시작하였다. 노동자의 형제요 부모인 농민을 생각하면 천만 다행이다. 하지만 어느 신문도 비가 오니 파업해도 된다고 보도한 신문은 없었다. 그것은 코미디가 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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