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진 어깨 수척한 얼굴의

조선 고추장 매운 사나이

지금 솔개 떠도는 요동벌의 하늘

무슨 일 벌어지기 직전이다



먹구름이 여기 저기서 달려온다

들풀은 고개를 숙이고

지나던 바람도 발을 멈췄으니

산은 엄숙히 말이 없었다



삶이 지루하게 생각될 때 얼른

적멸을 깨우쳐주고

문지방을 넘듯 천로로 건너갈 즈음



녹두꽃 피는 따뜻한 나라는

여기서 멀다



이제 천추에 못 이룬 뜻 다 펼쳤으니

가리라, 꿈에 그리던 동산으로

가서 보리밭 길 마음껏 달리며

노고지리와

못다한 이야기 주고받으리



진흙 땅에 진흙 소 타고 놀던

풀피리 소리 그립다

흰옷 입은 사람들의 마을에 해는 뜨고

바람은 나뭇가지에서 풍금을 켜는 곳

사랑과 곡식을 함께 가꾸던

먼 하늘 먼 땅이 가까이 온다

정일남·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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