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신년 극장가가 북적인다.

징검다리 휴일인 새해 극장가는 ‘공공의 적’(감독 강우석), ‘아프리카’(감독 신승수)등의 주목받는 우리영화와 ‘반지의 제왕’(감독 피터 잭슨), ‘디 아더스’(감독 알레한드로 아메나바르), ‘꿈속의 여인’(감독 페르난도 트루에바)등이 오랜시간 기다린 관객들의 갈증을 해소해 줄 예정이다.

가장 주목받는 영화는 2년 6개월의 제작기간, 2억 7천만달러라는 세계 최대 제작비, 3개의 에피소드 동시 제작 등 이슈를 몰고다닌 영화 ‘반지의 제왕’

피터 잭슨은 빠른 몽타주를 이용해 먼 옛날 요정, 난쟁이, 인간에게 주어졌던 19개의 반지와 그것을 지배하는 절대반지의 존재, 그리고 그것이 프로도에게 오기까지의 과정을 박진감 넘치게 그린다. 최대 규모 자본과 최첨단 테크놀로지를 동원해 엄청난 시각적 스펙터클을 제공하면서도 탄탄한 스토리로 관객들의 공감까지 얻어낼 수 있는 영화.

그런가하면 ‘공공의 적’, ‘디 아더스’, ‘마리이야기’, ‘아프리카’, ‘꿈속의 여인’이 그 뒤를 바짝 추격할 것으로 보인다.

강우석 감독의 전작 ‘투캅스’‘마누라 죽이기’와 ‘공공의 적’을 같은 선상에서 상상했다면 오산이다.

깡패보다 더 깡패같은 권투선수 출신의 형사 강철중과 이중적이고 변태적 면모를 지닌 범인 조규환이 대립구조를 형성한다. 강철중은 범인을 잡지 못하고 빌빌대는 무능한 형사고 조규환은 날마다 떼돈을 만지는 펀드매니저다. 정반대 상황에 있는 두 사람의 설정은 갈등을 조장하고 사건이 해결된 뒤 카타르시스의 강도를 더욱 두텁게 하려는 포석이다.

숨가쁘다 싶을 땐 한 템포 죽이고, 좀 늘어진다 싶을 땐 다시 휘몰아치는 흐름은 러닝타임이 2시간이 넘는다는 사실을 잊게 만든다.

‘디 아더스’()는 주변과 고립된 채 늘 안개에 쌓여있는 영국의 외딴 섬 저지에 위치한 주택에 세 사람이 도착하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모든 상황을 끊임없이 의문점 투성이로 만드는 매력은 남겨두되 뒷처리만큼은 깔끔하게 이어간다. 공포를 조금씩 조금씩 증가시켜 나가다가 두 번의 반전으로 정리해내는 감독의 연출력이 돋보이는 영화.

‘마리이야기’()는 잊고 살다가 사소한 것이 촉매가 되어 끊어진 기억의 회로가 복원되는 순간을 만들어내는 영화다. 어느날 남우를 찾아온 준호는 어릴 때 가지고 놀던 것이라며 작은 상자를 하나 건넨다. 상자 안에 들어있던 물건은 그를 열세살 여름으로 돌려보내는데…

영화 ‘아프리카’()에는 우연히 발견한 총 한 자루 때문에 쫓기는 신세가 된 엽기발랄한 네명의 여자가 등장한다. 사회의 부조리를 얼마나 위트있게 비틀 수 있느냐가 이 영화의 관건이다.

‘꿈속의 여인’()은 도저히 웃을 상황이 아닌데도 웃게 만드는 스페인 영화만의 독특함을 그대로 느낄 수 있는 영화. 밖에서는 히틀러가 숨통을 죄어오고 안에서는 내전이 진행중인 상황에서 히틀러는 스페인의 프랑코 정권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할 속셈으로 스페인을 대표하는 감독과 배우를 동원, 영화를 찍게 한다. 극중 영화의 제목 역시 ‘꿈속의 여인’. 지성적이지만 비굴한 영화감독, 재력은 있지만 독재자의 하수인인 권력자, 가진 것 없지만 진실한 집시 청년이 당대의 군상을 대변하는 영화.

오래간만에 나선 극장가, 편견없는 시선으로 영화에 빠져들 수 있길 기대한다.

沈銀淑 elmtree@kad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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