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곽영승

도의원(평창)/행정학 박사
영국의 엘리자베스 여왕이 이런 말을 했답니다. “화목한 여느 가족들과 마찬가지로 우리 가족 가운데도 괴짜가 있고, 성급하고 제멋대로인 젊은이들이 있고, 가족 간에 의견차이도 있다.”

그렇습니다. 쌍둥이도 차이가 있고 다른데 형제간에는 말해 무엇하겠습니까? 필자가 아는 두 형제가 있습니다. 이 형제는 같은 부모에게서 태어나 같은 초중고를 다녔습니다. 그러니 둘의 사고방식이나 삶의 태도는 비슷했겠지요. 둘 다 중학교까지는 우등생 모범생으로 부모의 자랑스러운 아들들이었습니다.

그런데 둘의 인생행로는 고등학교를 들어가고부터 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둘 다 산골 중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로 이른바 유학을 갔습니다. 형제는 자취를 했습니다.

형제들은 돈이 없어 반찬 대신 당시 유행하던 빠다(버터)나 마가린에 간장으로 밥을 비벼먹기가 일쑤였지요. 그리저리해 둘은 고등학교를 졸업했습니다만 형은 공부를 안 해 대학교를 가지 못했습니다. 동생은 대학교를 졸업했습니다.

그 두 사람은 그 후 참으로 다른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고등학교 단 3년을 허랑방탕 공부를 게을리 했던 형은 고생스러운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반면, 고등학교 3년을 나름대로 노력했고 꿈을 포기하지 않았던 동생은 10명이면 5, 6명이 찬성할 만한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물론 동생도 나름대로 고민과 고통이 없을 수는 없겠지만 남들이 보기에는 그렇습니다. 확실한 것 하나는 동생이 형보다는 고생을 덜하고 산다는 것입니다. 원인은 고등학교 3년을 형은 부실하게, 동생은 형보다는 성실하게 보냈다는 것 단 하나인데 그 결과가 평생을 흔들고 있는 것입니다.

이 같은 인생의 진리는 대학교를 나오고 안 나오고의 문제가 아니라 자신의 인생을 대하는 성실성의 문제가 아닐까요. 청춘시절 극히 짧은 기간 자신의 삶을 자신이 아끼지 않고, 자신을 스스로 존중하지 않고, 자신을 사랑하지 않은 결과가 평생 고통스러운 삶으로 이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형은 자신의 청춘을 되돌아보며, 동생은 형을 반면교사로 각각 자신의 자식들에게 같은 말을 합니다.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 열심히 해라.” 자식들은 모릅니다. “또 잔소리하시네.” 그 자식들이 자식을 낳고 세월이 흐르면 부모님에게서 들었던 인생의 지혜-잔소리를 자식들에게 똑같이 할 공산이 크지요.

그래서 인간은 불완전한 존재이고 그 불완전으로 인해 역사는 반복되는 가 봅니다. 그렇습니다. 자식들이 내가 깨달았던 삶의 지혜나 진리를 학창시절, 청춘시절 깨달으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런데 대부분의 자식들은 그렇지 못합니다. 어찌합니까? 이렇게 살아야지요. 그래도 그 자식들은 부모보다는 편한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물론 편한 게 행복한 것은 아닙니다만.

엘리자베스 여왕의 가족이라고 평범한 가족들과 뭐가 크게 다르겠습니까. 그 사람들이나 우리 같은 서민들이나 다 같이 불완전한 인간인데요. 그렇듯 인간이 평생 누리는 행복의 양도 누구에게나 똑같습니다. 재벌 총수라고 우리보다 더 행복할까요? 아니라고 봅니다. 누가 묻습니다. “요즘 어때?” 대답합니다. 분명하게. “살아있는 것이 축복이지. 내가 사는 곳이 낙원이야” 죽는 것보다는 낫지 않습니까? 새해부터 어두운 얘기인가요? 다짐을 해보자는 뜻입니다. 곧 봄이 오고 졸졸졸 눈 녹은 물소리가 들리고 새싹들이 피어나고 아지랑이가 아른거리겠지요. 그것들을 보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행복합니까. 눈이 오고 풀이 돋고 열매가 열리는 걸 느낄 수 있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행복합니까. 그러니 2011년에도 열심히 살자고 다짐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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