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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월 법흥사 주지

(사)평화로운세상만들기 이사장
1950년 6·25전쟁이 터지자 모든 사람들이 피난길에 나섰으나 당시 오대산 월정사 조실이었던 한암대선사께서는 홀로 남아 상원사를 지키셨다. 해가 바뀌어 1·4후퇴가 있게 되자 국군은 월정사와 상원사가 중공군과 공비들의 소굴이 되는 것을 막기 위해 절을 불태우기로 했다고 한다. 월정사를 소각하고 난 후 한밤중에 병사들을 이끌고 상원사를 찾아 온 장교에게 한암대선사는 잠깐 기다리라면서 가사와 장삼을 갈아입은 뒤 법당에 들어가 부처님 앞에 좌정한 후 “이제 불을 질러도 좋다”고 말씀하셨다.

이에 놀란 장교가 법당에서 나올 것을 강요했지만 한암 큰스님은 요지부동이었다. 오히려 장교에게 이렇게 호통을 치셨다고 한다. “그대가 장군의 부하라면 나는 부처님의 제자다. 그대가 장군의 명령을 따르듯이 나도 부처님의 명령을 따를 뿐이니 어서 불을 지르시오”. 결국 장교는 한암 대선사의 인격에 압도돼 돌아갔고, 그래서 우리 민족의 천년고찰 상원사는 오늘날까지 보존될 수 있었던 것이다. 두 달 후인 1951년 3월 큰스님께서는 당신이 입적하실 것을 미리 알고 15일간 물만 드시다가 장삼을 갖춰 입고 선상에 단정히 좌선하는 자세로 앉아 열반에 드시니, 세수 76세 법랍 54세 때의 일이었다.

우리 민족의 자랑스러운 세계문화유산인 팔만대장경 역시 해인사 폭격 명령을 거부한 공군조종사 김영환 장군의 용단이 있었기에 6·25의 전화를 면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처럼 전쟁은 인간에게 어느 한 가지 선택만을 강요한다. 아군과 적군, 죽임과 죽임을 당하는 것의 기로에서 평범한 민초들이 선택할 수 있는 여지란 거의 없다.

하지만 그 와중에서도 지켜내야 하는 숭고한 것들이 있으니, 이는 군사적인 전략전술보다 소중한 가치라 할 수 있겠다. 일반적으로 우리들은 호국이라고 하면 국가의 국토와 주권,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는 것만을 생각하게 된다. 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민족의 역사와 문화를 지키는 것이다. 36년간의 식민통치를 통해서 한민족의 역사와 언어를 말살하려고 했던 일제의 기도는 비록 실패로 끝났지만, 그 깊은 상흔은 60여년이 지난 오늘날까지도 우리 일상생활 곳곳에 남아 있음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거기에 더해 해방 이후에는 외세를 등에 업고 유입된 서구의 천박한 배금주의와 조상마저 부정하는 배타적 유일신 신앙이 5000년을 지켜 온 선조들의 찬연한 전통문화를 송두리째 파괴시키고 있다.

올해는 거란과 몽골의 침략을 간절한 호국원력으로 물리치기 위해 팔만대장경(초조대장경)을 조성한 지 1000년이 되는 뜻깊은 해이다. 어디 그뿐일까. 화랑정신으로 이룩한 삼국통일, 화엄사상을 통해 수립한 통일신라의 국가이념, 불심(佛心)으로 국민통합 이념을 삼은 고려, 임진왜란의 위기에서 조선을 구한 승병의 1700년 한국불교사 속에는 호국애민(護國愛民) 불교의 자랑스러운 전통이 살아 숨쉬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궁극적으로 우리 인류가 추구해야 할 세상은 전쟁 없는 평화로운 세계다. 전쟁의 이면에는 언제나 인간과 집단의 욕망이 자리잡고 있으며, 모든 생명과 소중한 것들을 파괴하는 것이 전쟁이니, 어떠한 명분으로도 정당화 돼서는 안 될 것이다.

전쟁 없는 평화로운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는 나의 것만을 집착하지 않고, 남을 배려하고 존중하는 상생화합의 실천이 있을 때만이 가능하다. 그러한 희망과 평화를 가꾸기 위해서는 남을 탓하기에 앞서 자신의 어리석음과 욕망을 극복하고 나를 바꿔 나가는 노력이 선행돼야 할 것이다.

호국보훈의 달을 맞아 주변국의 이기심에 의해 수많은 전란을 겪어야 했던 우리 민족을 지키기 위해 고귀한 희생을 하셨던 호국선열들의 숭고한 뜻을 새삼 마음 속에 새기며, 두 번 다시 이 땅에 전쟁이 없기를 빌고 또 빌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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