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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서와 원어

이병학 2011년 08월 26일 금요일
   
▲ 이병학

화천 원불교 도무
인간이 만물의 왕(王)자로 자처할 수 있는 조건이 많이 있으나 그 중에 말과 글이 있다는 것은 인간만이 소유한 문명의 이기요 생활에 필요 불가결의 보물이요 교육의 생명이라고 믿는다.

따라서 글과 말이 발전함에 따라 근래에 와서 원서와 원어란 말이 돌고 있다. 결국 우리나라 말과 글 외에 외국말과 글은 무조건 원어요 원서로 가정하고 다음과 같이 변론해 본다.

요즘 목욕탕에 가면 우리제품인데 머리기름을 <헤어 로숑>이라고 원서 그대로 쓰여 있는 것이 눈에 뜨인다. 외국말로 품명을 기록해야 품질이 더 좋고 사실과 같다는 것은 정말 외국말로 난센스가 아닌가.

생각해 보면 말과 글은 본질과 사실을 밝히고 전달하는 수단이지 말과 글이 본질을 변화시킬 수 없다고 믿는다. 말과 글은 다만 상 사물의 실상을 그대로 밝혀 전하는 이다. 말과 글은 그의 대변이요 각 나라마다의 말은 달라도 사실의 실체는 다를 수 없다. 대자연의 실상인 원서와 원어는 말과 글에 따라 좌우될 수 없다는 것이다.

예를 들자면 갓난아기와 어머니 사이에는 글도 말도 없지만 서로 의사소통이 잘되어 사랑과 보호 받으면서 잘 크는 것이 바로 원서와 원어로 통 한다는 것이다. 아기가 투레를 하면 어머니는 비설거지를 한다. 말도 글도 모르는 아기는 천진성이 천지 기운과 합해 있음을 엄마는 알고 아기 표정과 동작만 보고도 무엇을 요구하는 말인지 잘 알고 무언으로 보육 잘하고 또 아기는 수많은 여성 중에도 자기 엄마를 잘 찾아 간다.

나는 청각 장애로 농아인협회 회원으로 가입돼 있는데 수화로 모두 잘 통한다. 어느 나라 글과 말이든 참 원서요 원어가 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말과 글은 인간이 편리하게 살기 위해 만들어진 도구요 수단이다. 대자연 속에 모든 동물들과 초목도 말과 글이 없지만 우주만물과 한 삶 이 되어 후손을 생육하며 잘 살고 있는 것이 바로 원서와 원어로 통한다는 것이다.

한발 더 나아가서 진짜 원서와 원어는 인간의 지혜와 양심 속에 있다는 생각이다.

‘이곳에 쓰레기와 담배꽁초 버리지 마시오’ 하고 써 있는 곳에도 쓰레기가 난무하니 요즘 문맹자는 없을 터인데 아무리 대학을 졸업한 지식인이라 해도 쓰레기 막버리는 사람은 문맹자와 같다는 것이다. 정말 학교 문턱에도 못가보신 60년 전 우리 할머니는 마음이 바르고 현명하시니 우리 동네 변호사요 판사였다고 생각한다.

요즘처럼 성서와 잡지 속에 좋은 글이 홍수 같이 흘러나오고 TV 마이크 속에 좋은 말이 폭풍 같이 불어대도 인간이 지혜가 어둡고 양심이 굽어 있으면 효과 없이 도리어 죄악의 도구로 변함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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