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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 바닷가 모래밭이 사라졌다

문상기 2011년 11월 28일 월요일
   
▲ 문상기

수필가

지난 10월 중순 아버지 기일에 고향집에 다녀왔다. 동해안 삼척 고향마을 원평리는 넓은 면적의 해안방풍림과 잘 어우러진 조용하고 깨끗한 해수욕장으로 제법 알려진 마을이다. 솔밭과 마을 사이엔 근래에 생긴 해변레일바이크가 지나간다.

나의 어릴 적 추억에는 고향바다 풍경이 바탕화면처럼 깔려있다. 그러나 바닷가는 옛 모습을 찾기 어려울 정도였다. 내 기억 속에 또렷이 남아있는 어린 시절 바닷가의 풍경은 한 폭의 그림처럼 아름다웠다. 해송이 우거진 솔밭을 지나면 빨간 해당화가 무리지어 피어나는 야트막한 모래언덕이 있다. 해당화는 봄부터 여름이 끝날 때까지 피는데 꽃이 지고 난 자리엔 밤톨만한 열매가 달린다. 해당화 밭에 이어 눈부시게 빛나는 하얀 백사장이 펼쳐진다. 백사장은 이웃마을까지 이어져 10리는 거의 된 것 같았고, 폭은 백여 미터 정도 넓었다고 기억된다. 미역 감으러 바다로 가자면 모래밭을 지나야하는데 뙤약볕에 바짝 달구어진 그곳을 한달음에 뛰어 건너가기엔 어림도 없이 넓었다. 한참 뛰어가다 도저히 견디지 못할 정도로 발바닥이 뜨거워지면 웃옷과 고무신을 벗어 모래 위에 걸쳐놓고 그 위에서 잠시 발바닥을 식힌 후 다시 뛰어가기를 몇 번인가 반복한 기억이 새롭다. 그만큼 백사장의 폭이 넓었다고 기억된다.

그 넓던 모래밭이 사라지고 없었다. 고향 바닷가는 눈을 의심할 정도로 변해 있었다. 솔밭과 완만한 경사를 이루며 뻗어있던 모래밭은 2미터 높이의 가파른 낭떠러지를 이루며 패였고, 바닷물이 거의 솔밭 가까이까지 올라와 넘실대고 있었다. 소나무들은 모래가 쓸려나간 자리에 뿌리를 앙상히 드러낸 채 간신히 버티고 있는가 하면, 백여 그루의 소나무는 이미 파도에 쓸려나가 버린 뒤였다.

이런 현상은 이웃 어촌마을의 작은 포구가 국가어항으로 지정돼 방파제를 바다 안쪽으로 길게 쌓으면서부터라고 한다. 방파제 축조로 인한 조류의 변화가 직접적인 원인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였다. 해변백사장은 번갈아 불어오는 샛바람, 마파람의 풍향과 이에 따르는 파도와 조류의 영향에 의해 퇴적과 침식을 반복하며 오랜 세월동안 균형을 유지해 왔다. 그러나 방파제가 조성된 후 궁촌항 쪽은 퇴적만, 남쪽 원평리 앞 해변은 침식만 이뤄진 결과였다. 방파제 축조에 따른 개발이익이 지역사회에 어느 정도 미칠지는 모르겠지만 고향마을은 그 존폐가 달리는 재앙이 됐다. 이 상태의 해안침식이 지속된다면 방풍림은 물론 막대한 삼척시 예산이 투자된 레일바이크 철로도, 마을 가옥도 위협받게 된다.

고향바닷가의 이런 모습에 형님은 분통을 터뜨리고 있었다. 방파제 연장공사와 주변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사전에 검토하는 환경영향평가를 제대로 하지 않은 관계기관의 무책임함을 원망했다.

이른 아침 나는 혼자 바닷가를 거닐었다. 수평선 위 얕게 드리운 구름 위로 해가 솟아오르자 바다는 황금물결을 일렁이며 깨어나고 있었다. 고운 모래가 쓸려나가고 자갈더미만 남은 모래톱은 파도에 밀려온 부유물로 쓰레기장으로 변해버렸고 그 속을 헤집으며 물새 한 쌍이 가녀린 부리로 먹이를 찾고 있었다. 나는 갑자기 가슴이 먹먹해지며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나는 마음속으로 기원했다. 이 바닷가 모래밭이 내 어릴 적 모습으로 되돌아와 눈부시게 반짝이기를… 해당화는 그 때처럼 다시 피어나고 빨간 열매를 맺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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