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천의 봉의산은 특이한 산이다. 외로이 하늘을 찌르는 높은 산(高山揷天)도 아니요, 큰 산 과 험한 고개가 서로 안고 돌아가는 태산준령(泰山峻嶺)도 아니다. 겹겹이 솟아 아름다움을 자랑하는 천첩옥산(千疊玉山)도 아니고 무수한 봉우리와 골짜기가 서로 시샘하듯 발돋움하는 만학천봉(萬壑千峰)도 아니다. 도심 한가운데 다소곳이 기슭을 펼치고 앉았으니 한적하고 궁벽한 산골(幽僻雲林)을 만들지도 않으며 삼태기를 엎어놓은 듯 그 모양이 단순하니 구절양장(九折羊腸) 깊은 맛 험한 산길조차 없다. 밤낮으로 시민들이 오르내리며 산을 쓰다듬으니 달빛 속에 혼자 잠드는 월명공산(月明空山) 적막함과도 거리가 먼 산이다.

춘천시민은 봉의산을 춘천의 진산(鎭山)으로 여겨 아끼고 사랑한다. 외사산(外四山)과 내사산(內四山), 주산(主山)과 안산(案山), 좌청룡과 우백호를 따지는 풍수이론과는 관계없이 춘천과 춘천사람들을 진호(鎭護)하는 신산(神山)으로 여겨 대대로 떠받들어 왔다. 북쪽 산자락을 소양강 맑은 물에 적시면서 남쪽을 향해 양날개를 접고 앉은 봉(鳳)의 형상이라 그 고아하고 당당한 위풍이 명산의 이름값을 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게다가 13세기 몽고의 침입으로 춘천이 쑥대밭이 되었을 때 1만여 춘천 백성이 성을 쌓고 죽음으로 버틴 항몽 혈전의 현장이니 춘천시민의 애향구심점이기도 하다.

그 봉의산이 지금 시름시름 앓고 있다. 야금야금 산자락을 파먹고 들어서는 아파트와 각종기관 건물들이 산의 동서남북을 철책처럼 가로막았고 봉(鳳)의 정수리엔 키높은 철골 송신탑이 박혔다. 20년전 춘천 주둔 미군부대가 설치한 대형 통신반사판이 봉의산의 반듯한 이마를 가리고 있어 진산이란 이름이 부끄럽게 되었다. 춘천시민이 나서서 봉의산을 되살려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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