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서화(詩書畵)라는 말이 있다. 이 말에서 알 수 있듯이 전통적으로 우리는 그림보다는 글씨를 더 앞선 자리에 놓는다. 요즘에는 글씨가 상대적으로 홀대받는 것 같으나 예전엔 서도(書道)가 지식인 문화의 정수였다. 그러나 남종화(南宗畵)에 대하여 실재의 산수를 사생한 진경산수화(眞景山水畵)의 대가 정선이나 김홍도의 작품을 말하는 사람은 많아도 '진경문화'에서 탄생한 글씨를 논하는 사람은 드물다.

그래서 하는 말이지만, 진경문화가 화려하게 꽃 핀 시대에 정조로부터 가장 총애받은 서예가 조윤형의 서예작품 중 '홍만희 묘갈'의 글씨에선 외유내강함을 느끼게 되고, '이필중 묘갈'은 칼날처럼 군더더기가 없고 말쑥한 골기를 맛보게 된다. 그의 초서에 가깝게 흘려 쓴 필체의 '대원당 대 선사비'는 꿋꿋한 기백과 어울려 진경시대를 호흡한 대가의 면모 그대로를 전하고 있다.

서예 비평가들은 글씨 모양보다도 그 안에 서린 기백을 중시했던 당대인들의 서예관은 순조의 장인인 김조순의 냉정할 정도의 엄정한 해서체 글씨가 잘 보여 주고 있고, 80 고령에도 자획에 윤기가 흘러넘치는 윤사국의 정교한 필법에서도 같은 느낌을 받는다고 말한다. 이들은 대체로 꿋꿋하고 씩씩한 중국 고대 서예가인 안진경이나 유공권의 글씨체를 선호했던 사대부들이다.

그렇다고 엄숙주의만 있는 것이 아니다. 정조 때 그림스타 강세황은 기러기 날 듯 경쾌한 운필이었고, 남인의 주요 인물 이가환의 글씨는 고졸하면서도 감각적인 분위기를 풍긴다. 이 외에도 옛 서예 작품을 논할 때 괄괄한 기운이 꿈틀거리는 영조, 서릿발처럼 엄정한 정조, 온후하고 유약한 느낌의 순조의 어필도 거론된다. '안기부 총선자금 갈등' 속에서도 꿋꿋하게 김영삼 전 대통령이 서도전을 열고 있다. 글씨에 나타난 그의 정신은 무엇인가.

李光埴 논설위원 misan@kad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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