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리숙한 사람을 교묘하게 속여 이득을 취하는 게 사기(詐欺)다. 그 수법이 기발하고 사취의 규모가 커서 세상을 떠들썩하게 한 사기꾼들이 동서양 고금에 수두룩한데 두가지 공통점이 있다. 하나는 기법이 천박하고 과정이 치사해서 두고 두고 손가락질받으며 욕을 먹는 경우고 또하나는 기상천외의 발상과 치밀한 수법으로 세상 사람을 감탄하게 만들고 사기당한 쪽을 오히려 웃음거리로 만드는 경우다.

진나라 시황의 참모였던 조고(趙高)는 황제의 유언을 바꿔 어리석은 호해를 2세 황제로 즉위시키고 사슴을 말이라고(지록위마,指鹿爲馬) 우겨 국가권력을 사취했으니 만고의 권력형 사기꾼이다. 송나라 저공(猪公)은 원숭이를 기르며 먹이를 아끼려고 조삼모사(朝三暮四)의 고사를 만들어낸 치사하고도 악랄한 사기꾼이다. 둘 다 '눈 가리고 아웅'하며 얕은 꾀로 이득을 취한 경우여서 뒷맛이 무겁다.

우리나라의 봉이 김선달이 벌인 사기는 그 수법이 교묘하고 결과가 재미있어 오히려 찌든 민중의 삶에 한가닥 통쾌한 웃음을 선사한다. 돈많고 욕심 많고 인정이라곤 털끝만치도 없는 수전노에게 대동강 물을 팔아먹는 과정이 가히 고급 코미디에 가깝다. 그래서 사람들은 사기꾼 김선달에게 박수를 보내고 피해자인 부자를 고소해하며 허리꺾고 웃는다. 자유당 시절 대통령의 양자를 사칭하며 지방관리들로부터 융숭한 대접을 받고 다닌 '가짜 이강석'도 분명히 사기꾼이었지만 민중의 지탄을 받기는커녕 '대단한 인물'로 여겨졌었다. 웃음거리가 된 건 새파랗게 젊은 가짜 VIP에게 머리 조아리고 손비벼댄 나잇살 먹은 관리들이었다.

공짜라고 유혹해 물건을 떠맡기고 대금을 청구하는 치사한 사기꾼들이 부쩍 늘어나는 모양이다. '머리카락 사이에서 숨바꼭질하는' 사기꾼들에게 당하는 쪽에도 문제가 있다는 느낌이 든다.

盧和男 angler@kad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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