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이지(明治) 시대 일본의 유명한 계몽사상가 후쿠자와 유키치(福澤諭吉)는 '학문의 권장'이라는 책에서 “하늘은 사람 위에 사람을 만들지 않았고 사람 밑에 사람을 만들지 않았다."고 했으나, '터럭만큼도 도움이 안 되는 악우(惡友)'인 중국과 조선 등 아시아 국가들의 대열에서 벗어나 서양 문명국가들과 진퇴를 같이하라고 주장한다. 이것이 소위 탈아입구론(脫亞入歐論)이다. 자신의 논리대로 후쿠자와는 일본의 대외 침략전쟁을 강력히 옹호한다.

소설 '태양의 계절'로 일본 문단 최고 명예 중 하나인 아쿠다카와상을 받은 이시하라 신타로(石原愼太郞)가 재작년에 도쿄도(都) 지사에 당선됐을 때 세계는 그의 언행을 예의 주목했다. 그의 말과 행동이 극우적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후쿠자와하고는 반대로 이시하라는 반미(反美) 적개심을 드러내는 주장을 서슴지 않았다. 예를 들면 "서양의 상징은 미국이다. 미국의 기독교 정신은 쾌락주의로 대체되고 있다"며 주일(駐日) 미군기지를 몰아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시하라는 '태양의 계절' 이후 '노(No)라고 말할 수 있는 일본'과 그 후속 편인 '선전포고' 등 화제작을 통해 주눅이 든 일본인의 자존심을 한껏 부풀려 주었기에 폭발전 인기를 업고 선거에 당선됐다. 이번에 '한국에 전혀 무관심한' 신임 일본 총리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역시 10 년 경제 침체로 상심 중인 일본인들의 마음을 우익 성향의 튀는 언행으로 사로잡으면서 선거에 승리하고 있다.

일본이 아시아를 벗어나든 미국에 반대하든, 그리고 특히 고이즈미 신임 일본 총리가 우리나라에 전혀 관심이 있든 없든 지금과 같이 교과서 왜곡을 부추기고 "야스쿠니(靖國) 신사를 참배하겠다"는 등의 이른바 극우적 '사무라이 의식'을 가지고 있는 한 '아시아의 맹주'는커녕 '세계의 왕따'로 전락하게 될지 모른다.

李光埴 논설위원 misan@kad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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